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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오사카 유학기

[청춘챕터#2] 04. 오사카 유학을 돌이켜보면



마음이 무겁다.
13년 가까이 일어를 공부했고, 일본에서 1년을 지냈고, 지금도 일본에 많은 추억과 친구들이 있어 남의 동네같지 않은 일본.
나의 과도한 걱정이 행여나 현지의 친구들에게 불안이 될까봐, 되도록 담담하게 묻어두려고 했지만 -
결국 오늘  참지못하고 '일본 뉴스는 정부가 컨트롤하고 있으니 해외의 뉴스도 좀 봐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가 엄청나게 욕 먹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보일까 위로일까. 정답은 알 것 같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







* BGM : 야마자키 마사요시 -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청춘챕터 # 2



Rosinha












04. 오사카 유학을 돌이켜보면






내가 일본으로 1년간 교환학생을 갔던 것은 말했듯이, 2007년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이지 내 인생에 가장 큰 터닝포인트가 되어 준 경험이었고 - 지금의 내가 있는 결정적 계기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청춘으로 빛났던 한 페이지.
커다란 챕터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두 번째 에피소드가 시작되던 시기였다.


지금 급히 귀국하고 있는 한국인이 늘고 있는 가운데 - 당분간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 정보로서 별 가치 없을 수도 있지만,
추억을 되짚어 본다는 의미에서 구구절절 서글픈 맘을 갖고 말해보고자 한다.





1. 동아리 활동






보통 유학생들 - 특히 한국 사람들은 꼭 한인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그 안에서 끼리끼리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타국에서의 외로움을 달래고자 친구를 찾고자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굳이 외따로 무리지어 몰려 다니면서 작은 코리안 타운을 결성하는 것 보다, 자연스럽게 현지의 친구들을 사귀고 그 사이에 녹아드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했던 것은, 유학생, 특히 교환학생으로서는 꽤 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던 '동아리 활동' 이었다.


내가 들었던 동아리는 - 테니스 동아리. SEAGULL(갈매기)라는 곳이었다.
운동치였던 내가 이 곳에 들게 된 이유는 .. 1. 권유해주는 친구가 있었고 2. 어쩐지 청춘 만화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의 1년은 이 친구들 덕분에 정말 반짝반짝 빛이 났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앞으로 천천히!
지금도 그리움에 마음이 아릿아릿하다.





2. 아르바이트





유학생 = 아르바이트. 이 공식은 진리인 듯. 나는 1년 간 유니클로에서 일 했었는데 덕분에 일본의 기업 문화, 업무 분위기 등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되도록이면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해봤으면 한다. 유니클로면 일본에서는 손에 꼽는 대기업이라 파트타이머, 준사원, 정사원 관계없이 모두 엄격한 룰 아래(그러나 굉장히 합리적인 환경)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고 나는 그런 점이 재미있었다.
2007년 오사카 기준, 시급은 950엔이었다. 유니클로가 보통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시급이 센 편으로, 당시 오사카의 평균 시급은 800엔 정도였다.





3. 한국 대표(?)






엉망진창으로 흔들려서 이 사진을 골랐다는 것은 나만의 비밀! (...)
하반기에 옆 동네 중학교에서 6주 동안 한국어/문화 강좌의 볼란티어 강사로서 활동했다.
타국에서는 누구나 애국자라던가. 내가 얼마나 '애국심'과 거리가 먼 사람인지 잘 아는 나의 지인이 들을 때 마다 몹시 비웃었던 이 활동은,
애국심의 발발이었다기 보다는, 그저 왜곡된 진실을 바로 잡고 싶다는 정의감(?)에서 비롯된 .. 뭐 그런 .. 우물우물.
간단한 한국어, 한글 구조, 한국 전통 문화,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 
오사카 중딩들의 다소 짖궂고 편협한 질문에 최대한 객관적이되, 예쁘게 포장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었다!
나름 진지한 사명감을 가지고 임했던 .. 알찬 시간들.







'교환' 학생이라는 것은, 내가 오사카에 온 것 처럼 누군가 이 학교의 학생이 한국으로 간다는 사실.
아직 한류 훨씬 전이었지만 한국에 대한 관심도는 매니악하게나마 있었고, 한국으로 교환학생 가고자 했던 친구들도 서너명 만났다.
그 친구들에게 유학 튜터가 되어주는 것 또한 내가 즐거이 수행했던 임무.

그나저나 노트 돋네 (...) 생존에 필요한 표현 / 숙어들을 깨알같이 전수했다. ^_^ ...




내 사진은 작게. 난 이기적이니까!


 


4. 해보고 싶었던 모든 것들 체험하기




 

- 친구들과 소소한 불꽃놀이
- 플라네타리움
- 유카타 입고 여름 축제 가보기
- 동아리 MT (혹은 합숙)
- 교토, 고베 등 근교 도시 여행하기
- 집에서 나베 파티 열기
- 다 같이 타코야끼 만들어 먹기
- 친구들에게 한국 요리 대접
- 일본에서 미팅 참가
- 송년회, 신년회, 크리스마스 파티까지 해치우기
- 친구들과 온천 여행 떠나기
- 혼자 미술관, 동물원, 카페 정복
- 한밤중의 담력시험
- 바다에서 수박깨기




많진 않지만 위의 리스트가 내가 일본에서 '해보고 싶었던' 것들이자 '실제로 경험한' 일들이다. 
만화책이나 드라마에서 봤던 것들이 현실이 되는 기분은 오묘하고도 야릇했다. 


 




이제는 추억이 된 이야기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 좋은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고생도 하고 고민도 하고 외로워 하면서도 뚜렷하게 명멸하는 행복이 달콤했기 때문에 견뎌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100% 전력을 다해 충실히 살았었기 때문에 후회도 미련도 없이 순수하게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현재 지진 피해 지역과 오사카는 직접적인 영향이 있진 않지만,
나도 모르게 감정 이입이 되어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런 시기에 행복했던 추억을 논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도 되지만,
때때로 우리는 추억으로부터 격려와 힘을 얻기도 한다.



삶이 무감각해지고, 둔해빠진 어른이 되어간다는 느낌이 들 때 마다 나는 2007년의 뜨거웠던 나날을 기억해내려 애쓴다.
다시 한 번 힘낼 수 있도록 등을 떠밀어주는 이 추억들을 의지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이리라.


그렇게 믿고 싶은 밤이다.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