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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오사카 유학기

[청춘챕터#2] 01. 오사카 유학기 시작합니다





청춘챕터 # 2



Rosinha








01. 오사카 유학기 시작합니다





2007년.
내 인생에서 그 한 해를 빼놓는다면 꽤나 시시한 포트폴리오가 될 것 같다.
모든 사람에게 '터닝 포인트' 라는 것이 있다면, 나에겐 2007년이 그러한 시기였다.
야트막한 골목에 작게 뚫린 개구멍처럼, 시냇물에도 바짓가랑이 젖지 않고 건너갈 수 있는 징검다리처럼 말이다.
사소하지만, 나에게 꼭 필요했던.


그 시절의 나를 한 가지 단어로 압축한다면,

청춘.


인생에 몇 번의 챕터가 있다면- 그래서 내 인생도 몇 개의 챕터로 나눈다면, 
스무 몇 해를 지지부진 끌고왔던 시시껄렁한 챕터 #1의 막을 내리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 바로 2007년이었다. 오사카에서.









2007년 3월의 끄트머리. 칸사이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새벽 3시 온 세상이 깜깜한 시간, 내 몸 만한 캐리어 - 소위 말하는 이민 가방 - 을 짊어지고 인천공항을 향하던 리무진 버스에서의 그 서늘한 공기는 잊혀지지 않는다. 잠이 든 것인지, 깨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경계를 아슬아슬 지나며 눈을 뜨면 그저 새하얀 안개가 자욱히 끼어있던 창 밖만 보였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딱히 면세점에도 관심이 없어 그저 어영부영 떠밀리듯 비행기에 올라탔던 20대 초반의 나.

그 때는 익숙하지 않았던 출입국 수속. 눈 붙일 새도 없이 오사카에 도착한 나는 결국 입국 심사대에 발목이 잡혔다.
꼭 필요한 서류였던 입학허가증을 바보같이 수하물에 실어보낸 것.
결국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소소한 에피소드.

나를 픽업하러 와주었던 국제교류처의 다나카씨는 와 정말 '다나카씨' 라는 이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성실하고 친절한 아저씨였다.
기숙사 수속은 물론 근처 마트까지 동행하여 내 이불이며 수건이며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를 사다 나르는 것을 도와주었다.
짐 정리와 모든 서류 절차가 끝나자 이미 밖은 해가 져있었다.

묘하게 들뜬 마음으로 밤 거리를 서성이며 괜히 동네를 기웃거리다, 느즈막히 방으로 들어왔다.








3월 말인데도, 밤은 쌀쌀했다. 우리나라처럼 바닥이 따뜻한 생활을 하지 않는 일본은, 바닥에 카펫을 깔아 땅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은 다음 히터(열풍기)로 난방을 대신했는데, 건조한 것에 쥐약인 나로선 도저히 히터를 튼 채로 잠들 수 없었다. 결국 난방기구 없이 이불에만 의지하여 잠을 정챘다.
쌀쌀한 방 안의 공기에 코 끝이 시큰했다.

느려터진 인터넷으로 라디오를 틀어 '성시경의 푸른 밤'을 들었다.
낯선 방, 낯선 냄새, 낯선 사람들.
머리 맡의 애처로운 스탠드 불빛 아래 괜히 오사카 가이드북을 뒤적여보았다.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가봐야지 하며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1년.

고작 그것뿐인 날짜가 천금처럼 느껴졌다.
자신 없다거나, 두려운 것도 아니었는데도

그 밤은 괜히 눈물이 났다.






꿈도 꾸지 않은 밤이 지나고, 당연하다는 듯 아침은 왔다.
싸늘한 밤 공기에 몸이 딱딱하게 굳은 것처럼 아팠던 나는 좀처럼 침대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감기에 걸린 것 같은, 혹은 몸살이 난 것 같은, 이도저도 아니라면 비염이거나 알레르기거나- 뭐 온갖 핑계가 다 생각날만큼 '아픈' 아침이었다.

그 때 나를 깨우는 경쾌한 소리가 있었다.
1층이었던 내 방은 바깥과 닿아있는 외벽이 반투명 강화유리로 되어있어서 아침 햇살이 전면으로 쏟아져 들어왔는데,
거기에 어떤 실루엣이 아른거리며 나타났다.


나는 침대에서 힘들게 기어나와 창가로 다가갔다.











아침 햇살 아래서 뛰어놀며 짖는 소리로 날 깨운 이 사랑스러운 아이는 기숙사를 운영하던 부부가 키우는 롱 코트 닥스훈트. 이름은 JB였다.
창문을 열자 이불 빨래를 널기도 하는 좁다란 뒤뜰이 나타났고, 날 보며 반갑게 미소 짓는 장난꾸러기같은 요 녀석이 맞아주었다.
어찌나 사람을 잘 따르는지. 내가 몇 번 귀여워해주고 방 안에 들여 쓰다듬어 주었더니 종종 내 창문 아래에서 왕왕 거리며 날 부르곤 했다.


Happiness is a warm puppy. 행복은 따뜻한 강아지와 같다. 내가 좋아하는 피너츠에 나오는 대사.
밤이 가고 아침이 오고, 또 귀여운 강아지가 맞이해주는 이 곳이-

점점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개강은 4월의 둘째주 월요일부터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약 1주일이 조금 넘는 시간 여유가 있었지만, 그 사이 외국인 등록증이며, 시간표며, 담당 교수 면담이며, 이런 저런 공적인 일들로 학교와 구청을 왔다갔다 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감상에 젖어 있을 여유는 없었다. 현실은 조금씩 톱니바퀴가 맞물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