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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오사카 유학기

[청춘챕터#2] 03. 오사카의 봄







청춘챕터 # 2



Rosinha











03. 오사카의 봄






겨울이 아직도 길게 꼬리를 드리우고 꽃샘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이지만, 문득 봄이 머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 괜시리 마음이 설렌다.
특별할 것도 없는 시간의 흐름이지만, 우리는 충실히 흘러가는 계절을 눈과 마음으로 새기며 추억을 기워가는 동물들이니까.


푸릇한 새싹이 움트고 총총히 꽃들이 고개를 드미는 계절, 봄.








오사카의 벚꽃 만개 시기는 해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3월 말 - 4월 초. 온 거리가 연분홍 담요라도 덮은 듯, 핑크빛으로 출렁거린다.
길 위로는 떨어진 꽃잎이 융단처럼 깔리고, 사람들은 그 위를 발자국도 남기지 않고 걸어다닌다.
쏴- 하고 바람이 불면, 우수수 꽃비가 내리는 봄. 오사카의 봄은 그런 느낌이었다.







오사카에서 봄의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서는 하나미(花見)라고 불리는 꽃놀이를 떠나는 것이 필수다.
물론 이 때의 나는 오사카에 입국한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마땅히 함께 떠날 친구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혼자 벚꽃놀이를 떠난 곳은, 오사카의 '텐노지 동물원'이었다!






너는 누구냐(..)고 묻고 있는 듯한 그로테스크한 사자 조형물. 볼터치를 너무 과하게 하셨다.


텐노지 동물원을 가기 위해서는 그 이름도 직관적인 '동물원앞(도-부쯔엔마에)역'에서 내리면 된다.
동물원과 공원이 함께 있는 이 텐노지 동물원은 오사카에서 가장 큰 규모로, 많은 사람들이 봄 나들이를 위해 찾는다.










따뜻한 봄볕을 쬐며 나른하게 늘어져있는 동물들을 보고있노라면 내 마음도 노곤곤해져, 앞으로의 일이며,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살포시 덮어둘 수 있었다. 데이트하는 커플들,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족들 사이를 홀로 어슬렁거리며 동물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도, 생각보다 외롭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오게 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초등학교 무렵부터 취미삼아 공부해왔던 일어를 생활로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느 정도 환상이 있었던 것도 같다.
영화, 드라마, 만화 등 갖가지 매체를 접하며 신기루처럼 느껴졌던 일본에서의 학창시절을 한 번쯤 가져보고 싶었던 것이다.
맹목적인 동경을 갖기에는 현실적인 애라서, 그런 외국 생활의 허와 실을 체험해보고 싶었던 이유가 가장 컸다.

그리고 실제로, 오사카에서 1년간 교환학생을 했던 이 경험은 나를 겉도 속도 바꿔놓은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고작 1년 뿐인 것이다.

언제까지나 외로워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잠들어있는 의욕을 깨워야 할 순서였다.
어서 친구도 만들고,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빠짐없이 해봐야지. 100% 충실한 나날을 쏟아붓듯 보내야겠다고. 
쉽진 않지만 어렵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족이지만, 일본은 '금방 사라지는 순간적인 것들' 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독특한 정서가 있다.
우리나라가 '무궁한 것, 불변하는 것' 을 예찬하는 것에 비하여 일본은 곧 져버리는 벚꽃이라거나, 단 한순간 빛나는 불꽃- 같은
순간적인 것들의 '져버리는 미학' 에 더 포커스를 맞추는 경향이 있다.


내가 일본의 정서에 많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불변이나 영원이란 단어에 대한 신뢰가 없는 탓도 있겠지만, '순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정서적 습관 때문에 '곧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애착도 강한 편이다. 

금방 꺼져버리고마는 수많은 것들은 애틋하지 않은가.
내가 살아가는 이 시간, 내가 여기에 있다는 이 존재 사실 자체가 금방 꺼져버리고마는 애틋한 시간일테니.


그러니, 전력을 다하자- 고.


이 무렵 뿐만 아니라, 한국에 돌아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