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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오사카 유학기

[청춘챕터#2] 02. 오사카시 히라노구 키레니시 4-7-16

 

 

청춘챕터 # 2



Rosinha








02. 오사카시 히레노구 키레니시 4-7-16





내가 1년 간 살았던 곳은, 오사카의 남동쪽에 위치한 평범한 주거단지였다.
주택과 맨션이 적절히 섞여있었고, 지하철 역세권이라 역 근처는 꽤나 번화한 느낌이 들었다. 편의시설도 풍부했고 굉장히 생활하기 편리했다.
그래서 아마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이 기숙사를 추천해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곳은 보라색 지하철인 '타니마치선'이 지나다녔고, '키레우리와리역'이라는 상당히 어려운 이름을 갖고 있는 - 여행으로 왔다면 아마 절대 오지 않을 그런 곳이었다. 이른 아침에는 부활동에 열심인 것처럼 보이는 중학생 꼬마들이 야구 유니폼을 입고 집 앞을 지나다녔다.








학교는 기숙사에서 조금 멀었다. 자전거를 타고 전력질주하면 20분 정도 걸리는 위치. 전철로 한 정거장의 거리에 떨어진 곳이었다.
캠퍼스가 단대별로 조금 떨어져 있었는데, 본교에서 빠른 도보로 10분이면 별교에 닿을 수 있었다.

본교는 대학 본부와 교양을 들을 수 있는 강의동, 경영대, 이과대 등의 단대가 있었고 남쪽에 있는 별교는 내가 전공했던 관광학부와 국제커뮤니케이션 학부를 비롯하여 국제교류처와 동아리실, 그리고 테니스 코트가 있었다. 학교 자체는 그다지 유명한 곳도 아니고, 레벨이 높은 곳도 아니니 더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해도 좋을 것 같다.

학점 교류를 원활히 하려면 내 전공과 동일한 학과로 교환학생을 가야 했는데, 그러다보니 고르게 된 곳이 이 곳.
평범하게 경영대나 일문학쪽으로 갈까 했으나, 그랬다간 복학하고 전공 학점 채우느라 힘들어질 것 같아서 이 쪽으로 오게 되었는데-
결론만 놓고 말하자면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지하철과는 달리 '킨테츠' 라는 사철을 타야 학교갈 수 있다. 가장 집에서 가까운 역이 이 곳.
학교가 있는 전철역은 바로 다음 역인 '카와치아마미' 겨우 한 정거장 가는데 교통비가 200엔. 왕복 400엔.
참내 .. 이래서 일본애들은 전부 자전거르 등하교를 하는구만. 하고 그 때 깨달았다.

그러나 가장 총체적 난국이 있었으니 -



내가 자전거를 못 탄다는 것 ^_^;;;



내가 자전거를 못 탄다고 할 때 마다 그 경악하던 반응들 ... 
아니 한국에선 자전거 못타는 여자애 꽤 많거든요? 내가 아는 사람만 해도 몇 명인데 ..
어차피 언덕이 많아서 자전거 타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고, 버스만 타도 웬만한 곳은 다 갈 수 있고,
집에 아들이 있지 않은 이상 굳이 어렸을 때 엄마한테 자전거 사달라고 말 할 이유도 없고 -
그러다보면, 못 탈 수 있잖아요 .... 제가 이상한거 아니겠죠? -_-;


자전거를 못 타면?


1. 교통비 400엔의 압박을 이기고 전철을 타거나
2. 걷거나


- 네. 전 가난한 유학생. 2번을 택하겠습니다. 걸으면 얼마나 걸리나요?
- 편도 1시간이요.
- 참내. 전철로 한 정거장인데 왜 한시간씩이나 걸리죠?
- 이게 참 재수없게도, 당신이 사는 동네인 히라노구와 학교가 있는 아마미 사이에는 야마토가와라는 큰 강이 흐른답니다.
- 그게 어쨌다고 ..
- 전철이면 그 강을 다이렉트로 건너서 올테지만 걷는다면 다리가 있는 곳까지 돌아서 가는 효과 ^_^



네. 그래서 저 - 1년 동안 학교 걸어서 다녔어요.
왕복 2시간씩.
그래서 결석도 많이 했습니다. 도저히 힘들어서. 비 오고 눈 오는 날엔 그냥 결석.
본의 아니게 학업을 소홀히 했네요 ..



Anyway.








여름이 오기 전까지는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다녔다.
생각보다 다닐 만 했고, 풍경도 아기자기하고 즐거운데다 군것질 할 수 있는 스팟도 많아서 생각보다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처음엔 여행다니는 기분이었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으로 항상 카메라를 손에 쥐고 다녔으니까
이런 저런 시시한 풍경 사진도 무진장 찍었더랬다.

원래 걷는 것은 좋아했고, 꾸준히 운동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
건강의 측면에서 본다면 아주 내 인생 통틀어 가장 활기찬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만화책에서만 종종 보던 그 메론빵. 밀크티와 함께 먹어보다.
메론빵은 겉모양이 메론 껍데기처럼 생겨서 메론빵이라고 부를 뿐, 맛은 전-혀 메론과 상관없는 플레인한 빵이다. 오히려 소보루에 가까운 ..
그래서 딱 한 번 사먹고 다신 안 사먹었다. 이것보다 맛있는 일본 빵이 얼마나 많은데 (..)

그래서 본의 아니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었던 메론빵님의 사진.









4월 초. 오사카는 벚꽃이 한창이었다. 일본에서 보는 벚꽃은 묘한 감상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서야 봄, 을 만끽한다는 느낌.
무수히 흩날리는 벚꽃잎을 보고 있자니 이와이 슌지 감독의 '4월 이야기'도 떠오르고.
우리나라에도 벚나무가 많지만 일본의 벚나무는 스케일이 다르구나- 하고, 일본인들의 각별한 사쿠라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달까.


2007년의 봄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친구도 연고도 없이 뻘쭘하게 들어선 이방인의 태도로 쭈뼛거리며 혼자 메론빵이나 사먹던 외로운 유학생의 시절.
홈시크(homesick)의 절정이었지. 내가 여길 왜 왔을까. 엄마 보고 싶다. 아냐 그래도 이왕 왔으니 즐겁게 지내야 해! 밝게 지내자!
뭐 이런 마음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머릿 속을 헤집던 - 싱숭생숭하던 봄의 향기.



이 땐 알지 못했다.
내 평생 다시 없을 - 행복한 일들이 눈 앞에 진수성찬처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