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를 여행하기 전에 누구라도 기대하는 '아프리카'의 모습은, 바로 쉽게 만날 수 없는 압도적인 자연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남아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세련되게 발전한 대도시의 국가. 백인들의 지배를 받으며 그들의 사회 인프라를 그대로 도입했기에, 아프리카인지 유럽인지 헷갈릴만큼 깔끔하게 조성된 케이프타운은 그런 의미에서 살며시 이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물론 케이프타운이 지구의 그 어떤 도시와도 비교되지 않을만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매력적인 도시임에는 틀림없지만,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투박하고' '광활한' 자연보다는 고층빌딩과 유럽식 건물, 아기자기한 거리의 풍경에 먼저 눈이 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음푸말랑가주(州)에서의 드라이브는 특별할 수 밖에 없다. 질주를 사랑하는 라이더들이 평생에 한 번쯤은 꿈꾼다는 하늘 도로. 해발 1000m에 달하는 고지대에 도로를 깔아 양 옆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아프리카 대(大)자연을 파노라마로 만나고 그 경이로움을 고스란히 맛볼 수 있는 곳. 바로 파노라마 루트(Panorama Route)로 일컬어지는 R532, R533 도로다.
음푸말랑가주(州)의 넬스프루트는 크루거 국립공원의 관문이자, 파노라마 루트의 시작이기도 하다. 넬스푸르트 자체가 야생동물과 대자연을 가슴에 품은 거대한 유기체인 셈이다. 아프리카의 백미인 사파리와 울창한 자연환경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절대 빼놓아선 안되는 남아공 여행의 필수 코스가 아닐런지.
서울의 탁한 하늘, 특히 요즘처럼 황사가 뿌옇게 낀 하늘을 올려다보면 상쾌하다 못해 통쾌하기까지 하던 아프리카의 하늘이 자꾸만 떠오른다. 내 정수리로 떠받들던 새파란 하늘과 가슴을 압박하며 세차게 불던 바람, 흙과 나무 냄새. '해방감'이란 이런 것일까, 완벽히 자연의 품에 안겨있다는 사실에 어찌나 신이 나던지 쉴 새 없이 높은 목소리로 재잘거렸던 그 때.
남아공의 눈부신 파노라마 루트는 미국의 그랜드 캐년(Grand Canyon), 나미비아의 피쉬리버 캐년(Fish River Canyon)과 더불어 세계 3대 협곡 중 하나인 블라이드 리버 캐년(Blyde River Canyon)을 중심으로 때묻지 않은 대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코스. 대부분 파노라마 루트의 관광수입으로 살아가고있는 작은 마을, 그라스콥(Graskop)에서 숙박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그라스콥에서는 자연환경을 이용한 다양한 어트랙션이 있어 더욱 여행자의 발길을 사로잡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아찔한 높이를 자랑하는 빅 스윙(Big Swing)이다. 무려 1493m 높이의 까마득한 절벽을 줄 하나에 의지하여 뛰어내리는 번지점프 같은 것으로, 어지간한 담력이 아니고서야 시도할 엄두도 안나는 아찔한 높이인데, 우주 최강 겁쟁이라 자부하는(;) 나로서는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다.
간 큰 여자 두명이 빅 스윙 체험 중! 꺄악-하고 날카로운 비명이 절벽 아래로 울리는가 싶더니, 이윽고 까르르 웃는 소리가 넘친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최고'를 연발하는 그녀들의 얼굴 위로 거짓없는 미소가 보이지만, 역시-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용기.
비록 빅 스윙의 슬로건인 "Conquer your fear!(두려움을 정복하라)"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결코 낙심할 필요는 없다. 파노라마를 만끽할 방법은 그 외에도 많으니까. :)
@ '뾰족한 첨탑'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피너클(Pinnacle)
@ 신이 세상을 굽어보기위해 만들었다는 갓즈윈도우(God's window)
@ 보기만해도 가슴이 상쾌해지는 리스본 폭포 (Lisbon Falls)
@ 소용돌이치는 강줄기에 뚫리고 깎여나간 절벽이 장관을 이루는 브룩스 럭 포트홀(Bourke's luck potholes)
이처럼 파노라마 루트는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아프리카의 대자연을 즐길 수 있다. 꼭 봐야하는 유명스팟들도이야 물론 멋지지만, 파노라마 루트 자체가 워낙에 근사한 길이다. 내리쬐는 햇볕에 반짝이는 무성한 숲들을 옆에 끼고 마치 하늘을 향해 달리는 것 같은 착시효과가 느껴질만큼 탁 트인 시야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 과연 '라이더의 꿈'이라는 별명을 가질만하다며 납득했다.
파노라마 루트의 또 다른 즐거움은, 남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팬케이크 레스토랑 '해리스 팬케익(Harrie's Pancakes)'에서 맛있는 오후를 보내는 것. 그라스콥(Graskop)의 명소이자 남아공의 맛집 중에서도 이름높은 해리스 팬케익은 파노라마 루트를 여행하는 여행자라면 꼭 한 번쯤 들러봐야 할 식당이라는 평. * Harrie's Pancakes (http://www.harriespancakes.com/)
팬케익은 식사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Savoury와 달콤하여 디저트에 적합한 Sweet가 있다. 크레페보다는 살짝 두껍게 구워낸 팬케익 안에 크림소스에 치킨과 버섯, 캐슈넛을 볶아 넣은 Savoury Pancake는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다. (치킨, 머쉬룸, 캐슈넛 팬케익 R55, 한화 약 8250원) 팬케익의 가격은 대략 25~60란드 정도다. 디저트로 먹은 블랙체리 팬케익(사진 아래)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올려 더욱 새콤달콤! :)
남아공 파노라마 루트를 여행하면서 내가 느꼈던 것은, 이곳 사람들은 자연을 무심하게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 거대하다고 인지하지도 못할 만큼 거대한 자연 속에 파묻혀 당연하다는 듯 누리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의 소중함에 무뎌져 있는 것 같았다. 도시에서 온 우리들이야 눈길 닿는 곳 구석구석 감탄 연발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눈 뜨면 당연히 펼쳐지는 일상의 풍경이 아닌가. 나 역시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이 감동을 잘 몰랐겠지. 부럽기도 하고, 다행이다 싶기도 한 복잡미묘한 기분이었다.
파노라마 루트의 주인은 결코 인간이 아니다. 이 풍경을 함께 공유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있는 것. 특히 야생 원숭이는 마을 근처까지 내려와 식량을 훔쳐가거나, 구걸한다고 하니 어찌보면 이것도 공생의 한 줄기인 것은 아닐까. 원숭이에게 카메라를 들이대자 수줍게 포즈를 잡아주는 모습을 보니 모델이 처음은 아닌 듯, 익숙해보이기까지 한다.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 있는 파노라마 루트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를 꼽자면 바로 '블라이드 리버 캐년'을 정면으로 보는 것. 다른 협곡들이 암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 삭막하고 험준한 위엄이 있는 반면, 블라이드 리버 캐년은 울창한 녹지로 뒤덮여 수많은 생명이 살아숨쉬는 삶의 터전으로서 포근함이 느껴진다. 실제로 다양한 조류와 포유류가 살아가는 생태계의 보고라고 하니, 생명을 가슴에 품은 '마더 네이쳐(Mother Nature)'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로구나- 하는 실감이 든다.
블라이드 리버 캐년은 24km를 흐르는 블라이드 강이 암석을 갈고닦아 대략 800미터 높이의 깊은 협곡이 만들어진 것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손꼽힘은 물론 세계에서도 반드시 봐야 할 풍경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아찔한 절벽에 별다른 안전장치없이 관람하는 것이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할 듯 싶다. 사진도 좋지만 위험을 무릅쓰진 말 것.
남아공 여행의 가장 큰 화두이자, 나 역시 가슴에 새겼던 말이다. Have a safe journey. 안전한 여행, 그래서 더 행복한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 :)
우리는 파노라마 루트를 반나절 코스로 짧게 돌았지만 자동차를 렌트해서 여행을 한다면, 앞으로 다시 없을 그 길을, 그 순간을 더욱 천천히 만끽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자연이 만물의 어머니이기 때문일까? 태어나 처음 오는 곳인데도 마냥 고향에 온 것처럼 한없이 편안하고 포근하던 그 때의 마음. 지금 돌이켜보면 '행복'이라는 단어로 치환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는 사실을, 서울로 돌아온 지금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글/사진] 로지나 : 캐논 sx40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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