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북동쪽에 위치한 '넬스프루트'는 요하네스버그에서 국내선을 타고 약 1시간 거리. 이곳이 바로 지구 최대규모의 야생동물의 왕국, 크루거 국립공원으로 가는 관문이다. 공항에서 다시 차를 타고 약 1시간. 공항으로 픽업나온 드라이버와 함께 눈이 시릴만큼 새파란 하늘을 자랑하는 넬스프루트의 뜨거운 햇살을 온 몸으로 느끼며 우리는 크루거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크루거 국립공원은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립공원이다. 모잠비크, 스와질랜드, 짐바브웨 등 주변국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크루거 국립공원'은 한 국가의 크기를 뛰어넘는 면적이라고 하는데, 언뜻 짐작이 가질 않는다. 대략 이스라엘과 맞먹는 크기라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처럼 광활하고 드넓은 크루거 국립공원의 야생동물 종류와 수는 세계 최대규모를 자랑한다. 보통 아프리카하면 세렝게티가 떠오르지만, 실제 규모는 크루거 국립공원이 우위에 있다. 남아프리카에 살고있는 포유류의 50% 이상이 이곳에 서식하고 있다고 하니, 아프리카 필수코스라해도 과언이 아닌 '사파리'를 진정 느껴보고 싶다면 '크루거 국립공원'이 정답인 셈이다. :) 국립공원 내에는 다양한 롯지(Lodge) 캠프가 있고, 우리는 그 중에서 사비사비(Sabisabi) 롯지를 선택했다. 롯지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는 다음에 좀 더 상세히!
크루거 국립공원은 오늘날 야생지대를 확장하며 생태계를 보호하기위해 앞장서고 있지만, 원래는 1898년 남아공 연방 구성 전의 트란스발 공화국 대통령 '폴 크루거'가 사냥을 즐기기 위해 조성한 곳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물론 사비 강 주변일대를 밀렵에서 보호하기 위해 처음으로 보호구로 지정한 것이라는 대외적인 히스토리가 있으나, 사파리 프로그램 이름을 '게임 드라이브(Game Drive)'라고 부르는 유래를 더듬어보면 폴 크루거의 사냥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어쩌면 인간의 욕심으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르는 이 땅이, 지금은 되려 동물들의 평화를 지켜주고 있으니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한 셈이다.
크루거 국립공원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저 멀리 뛰어노는 임팔라들이 보인다. 처음으로 목격한 야생동물이었기에 다들 흥분하여 카메라를 꺼내든다. 그러나 이윽고 깨닫는다. 사파리에서 임팔라는 개보다 흔한 존재라는 (...) 사실을! 무려 15만두 이상이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살아간다고 한다. 덕분에 정말 가는 곳 마다 임팔라, 임팔라, 임팔라를 목격할 수 있다. :) 언뜻 평화롭게 뛰어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굉장히 겁이 많아서 자동차 엔진소리만 들려도 재빠르게 도망가버린다. 먹이사슬 안에서 육식동물의 먹잇감이 되는 초식동물이기에 경계심이 강한 것은 당연한 모습이다.
사파리는 사진과 같은 오픈형 사륜구동을 타고 진행된다. 크루거를 방문한 여행자들은 어디까지나 철저한 이방인이므로 결코 야생에 손을 대려고 해서는 안된다. 반드시 전문 가이드인 레인져와 동행하여야 하며, 동물을 만났을 땐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차에서 내리는 등의 행동이 철저히 금지된다. 동물을 위협하거나 지나치게 떠드는 것도 물론 금지.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하여 레인져는 항상 장총을 소지한다. 이렇게 말하니 제법 살벌해보이지만 ... 실제로 임팔라같은 먹이사슬 하위의 초식동물을 제외하면 동물들은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 레인져의 말에 의하면 이미 사파리를 누비는 사륜구동이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커다란 바위 수준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렇기에 사람의 돌발행동에 크게 위협을 느낄 수도 있다고 한다. 처음부터 경계하는 것과, 안심하다가 놀라는 것의 차이를 떠올려보면 납득이 간다.
사파리에서 사람들이 가장 보기를 열망하는 동물들은 사자, 표범, 코뿔소, 코끼리, 버팔로와 같이 '위압감'이 느껴지는 녀석들. 그만큼 보기 어려워 더욱 인기만점인 이 다섯 동물을 두고 빅파이브(Big Five)라고 부른다.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이 빅파이브 동물들은 남아공 지폐의 모델이기도 하다. :) 200란드는 표범, 100란드는 버팔로, 50란드는 사자, 20란드는 코끼리, 10란드는 코뿔소. 누구나 사파리를 시작하기 전에 이 빅파이브를 모두 만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사파리를 짧게 즐길 수 밖에 없는 여행자들이 이 빅파이브를 다 만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내가 가져간 남아공 여행책 <남아공,무지개 나라를 가다>의 저자도 사자 보기를 고대했지만 만나지 못했다며 실망을 토로하고 있었다. 또 내가 남아공으로 떠나기 전에 올린 포스트의 댓글 중에서도 '아프리카에서 사자는 보지 못했다'는 아쉬운 이야기가 있었으니, 나 역시 자연스레 '빅파이브를 다 보는 것은 무리겠구나.'라며 가볍게 단념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과는? 나는 빅파이브를 모두 만났을까? :)
정답은 "YES!"
놀랍게도, 우리의 운이었는지 레인져와 트랙커의 실력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빅파이브를 모두 만났다! 심지어 버팔로는 우리가 머물고 있던 롯지 앞마당까지 찾아와 진흙목욕을 즐기는 여유로운 모습까지 보여줬다. 사자는 암사자 숫사자를 떼로 만났고, 아기 코끼리와 엄마 코끼리의 단란한 오후는 물론 코뿔소 가족의 아침산책과 배부른 표범의 느긋한 모습까지도 볼 수 있었다! 위 사진은 모두 직접 찍은 것. 눈으로 보면서도 내 눈을 믿을 수 없는 생생한 광경이었으니, TV '동물의 왕국'을 3D로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물론 그러한 착각은 사자가 느릿한 걸음으로 우리 자동차 옆을 스쳐 지나갈 때 완전히 압도되어 마른 침만 삼키던 순간, 와장창 무너졌지만 말이다. (^^) 더 자세한 에피소드는 조만간 풀어야겠다.
물론 빅파이브를 만나지 못했다하여 사파리가 실패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크루거에 실망하기는 아직 이르다. 이미 야생의 품에 안겨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설레는데다,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환상적인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야생동물의 종류는 우리 생각보다 정말 많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동물들을 얼마나 많이 만났는지 ... 게다가 보기 어렵다고 소문난 사자나 표범이 꼭 아니더라도 평소 동물원에서나 만나던 반가운 동물들이, 대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단체로 미팅이라도 하는 듯 했던 기린 무리. 그 중에서 유난히 사이가 좋아보이는 기린 삼형제.
10등신의 우월한 비율을 뽐내는 환상적인 기럭지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더랬지. :)
얼룩말 증명사진 :) 나랑 눈이 딱 마주치는 순간. 푸릇한 수풀 속에서 얼룩말의 색깔이란 얼마나 선명하던지!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던, 환상적인 얼룩말의 무늬!
개코원숭이들의 평화로운(?) 한 때. 무슨 사연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들만의 '사랑과 전쟁'을 찍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제일 왼쪽에 있는 원숭이의 해탈한 듯한 표정이 너무 웃겼던. (^^)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만나는 '동물의 왕국'이 텔레비젼 속 '동물의 왕국'보다 더 강렬한 색채와 냄새를 갖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일 수 밖에 없다. 내가 본 것은 한컷 한컷 지나가는 슬라이드쇼가 아니라, 일상의 냄새가 깊게 배어있는 야생의 라이브쇼였으니까. 과장된 드라마와 인위적인 연출에 속는 것이 아닌, 소소하고 평범한 몸짓과 표정 하나에 웃거나 놀라울 수 있었던 감동의 순간들. 아직 사파리 이야기는 시작에 불과하다. 평생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가득 담아왔으니까. :)
[글/사진] 로지나 : 캐논 SX40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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