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여행 / 남아공 비행시간 / 장거리 비행
이번 6박9일 남아공 여행에서 내가 탄 비행기는 총 8대. 비행시간은 약 40시간. 하늘에서 꼬박 이틀을 보낸 셈이다. 이렇게보니 멀긴 멀다, 아프리카. 남아공이 더욱 멀게 느껴지는 이유로는 직항이 없다는 점도 한몫한다. 홍콩이나 싱가폴, 두바이를 경유해야만 닿을 수 있는 곳. 나는 사우스아프리카 항공(SA)을 타고 다녀왔다. 저녁에 출발하는 홍콩행 비행기를 타고 홍콩에 도착한 다음, 자정무렵 요하네스버그행을 타면 약 13시간 뒤 남아공에 도착한다. 물론 7시간 시차로 인해 우리가 도착하는 것은 이른 아침. 비행기에서 푹 자두지 않으면 첫날부터 제법 고된 일정이 될 듯.
그러다보니 삼시세끼를 기내식으로 때우는 날도 있기 마련. 먹고, 자고, 먹고, 자고의 반복. 마치 비행기 안에서 사육당하는 기분이다. (그러나 절대 기내식을 거르진 않는 나) 캐세이퍼시픽 기내식은 정말 맛이 없었고 SA의 기내식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블루치즈, 크래커, 초콜릿같은 스낵거리도 잘 챙겨먹었다. 사실 기내식은 맛을 떠나서 그 자체로 기다려지는 법이다. 승무원이 카트를 끌고 저기서부터 나타날때 즈음이면 메뉴가 뭘까 두근두근 기다리게 된달까. 아무렴 '하늘 위 도시락'이라 불리는 기내식은 그 자체로 여행을 맛보는 기분이니까.
짐은 인천에서부터 요하네스버그까지 쓰루보딩(through boarding)을 통해 곧바로 부칠 수 있다. 쓰루보딩이란 경유지에서의 보딩 과정도 미리 한꺼번에 수속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을 통해 홍콩 ↔ 요하네스버그 환승 구간에서는 별도의 보딩없이 수화물 검사만 하면 다음 비행기로 탑승이 가능하다. 보통 이러한 쓰루보딩은 같은 항공사를 이용하여 환승하거나, 같은 회원사 (스카이팀, 스타얼라이언스와 같은) 항공을 이용할 경우 해당되며, 경우에 따라 쓰루보딩이 되지 않을 때도 있으므로 항공권 예약 과정에서 미리 확인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쓰루보딩이 되지 않는다면 짐을 찾고, 다시 카운터에서 비행기 티켓을 끊으면서 짐을 부친 뒤 출국수속을 밟아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다.
홍콩행 비행기가 이륙하자 곧 승무원이 음료 서비스를 개시한다. 예전 같았으면 오렌지쥬스 정도를 골랐겠지만 어쩐지 맥주가 땡겨 산미구엘을 집어 들었다. 홍콩행인지라 중국어로 자막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뭘 봤더라?) 맥주를 홀짝홀짝 마셨다. 긴장이 느슨히 풀리는 것이 느껴진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화에 금세 싫증이 난지라 남아공 책을 꺼내폈다. 앞으로 갈 일정을 훑어보며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만끽해본다.
우리나라에 현재 출판된 남아공 여행 관련 서적은 좀 빈약한 편이라 선택의 폭이 좁았다. <남아공 내비게이션>은 철저히 정보 위주의 여행 가이드북으로 기본상식에 충실한 책이지만, 지도가 굉장히 엉성하므로 주의할 것. 그러나 스팟별 정보는 물론 여행 요령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루고 있으므로 실제 여행을 떠날 경우 도움이 되는 책이다. <남아공, 무지개 나라를 가다>는 그에 비해 사견으로 가득한 에세이북이다. 정보보다는 감상에 치중하여 남아공을 소개하는 정도의 책이므로 가이드북이 아닌 남아공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
살짝 졸다보니 어느새 홍콩에 도착. 이제 요하네스버그로 향할 차례다. SA 항공을 타기 위해 게이트 33번으로. 23:50 출발 SA287편을 기다리고 있는데 확실히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의 인종이 달라진 느낌. 동양인은 우리, 그리고 저쪽 중국인 한팀 정도다.
요하네스버그를 향해 날아가는 SA항공편은 생각보다 크고 좋았다. 별다른 불편함은 없었고 담요와 베개, 아이마스크, 양말, 칫솔과 치약도 이미 준비되어 있어서 요긴하게 사용했다. (왼쪽 아래) 흑인 승무원이 인상적이었다. (오른쪽 위) 기내식을 먹자 곧 비행기에 불이 꺼졌다. 다들 잠들 채비를 한다. 나 역시 콘택트렌즈를 안경으로 바꾸고 신발을 벗은 다음 목 뒤에 베개를 끼워넣었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한 다음 무슨 영화를 볼까 컨트롤러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너무도 사랑하는 <엑스맨 퍼스트클래스>가 있길래 신나게 재감상하며 모르는 사이 잠들었다. :)
얼마나 잤을까? 창문덮개를 밀어올려보니 어느새 하늘에 새벽빛이 감돈다. 서리가 잔뜩 얼어붙은 창문 밖으로, 손톱만큼 붉던 아침노을이 천천히 번지는 것을 바라본다. 비행기 안에서 일출을 맞이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자고있는 옆사람에게 방해가 될까봐 오래 바라보진 못했지만, 눈부신 태양빛이 틈새로 밀려들어오는 순간 홀로 아침을 독점하고 있다는 묘한 황홀감이 들었다. 그러나 아직 비행기 안은 한밤중. 나 역시 셔터를 누르다 또 한번 까무룩 잠들어버렸다.
눈을 뜨니 아프리카가 있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가늠이 어려울만큼 넓게 펼쳐진 저 아래의 땅이 아프리카 대륙이라고 생각하니 몹시 두근거렸다. 도착이 가까워져오자 깨알같은 마을이 드문드문 나타나더니, 어느새 요하네스버그로 추정되는 곳으로 들어선 듯, 거리가 화려해진다. 이곳이 남아공인 것이다. 다양한 인종이 화합하고 공존하는 무지개의 나라. 혹은 무지개를 꿈꾸는 나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비행기가 착륙할 때, 웰컴 메시지와 함께 특유의 흥겨운 아프리칸 리듬이 느껴지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프리카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났다. 드디어 한 고비를 넘겼다. 길었던 비행이 요하네스버그에서 일단락 된 것이다. 장거리 비행으로 뻐근해진 몸을 일으켜 드디어 요하네스버그 공항에 발을 딛었다. 짐 찾으러 가는 길에, 경유지에서 환승하다가 종종 짐이 늦게 도착하거나 아예 잃어버리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소문이 생각나 일행과 불안한 농담을 주고 받았다. 다행히 짐은 무사히 도착했다. :)
그러나 아직 비행은 (징그럽게도) 끝나지 않았다! 이번 남아공 여행의 첫번째 일정이 요하네스버그에서 비행기로 약 한시간 떨어진 넬스프루트에서 시작되기 때문. 크루거 국립공원에서의 고대하던 사파리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요하네스버그에서는 바깥 공기 한 번 쐬지 못하고 다시 한 번 국내선으로 환승. 아담한 사이즈의 제트비행기를 타고 양떼같은 구름 위를 날아, 길고 길었던 시작의 막을 드디어 올리기 위해 넬스프루트로 향했다.
그렇게 남아공 여행이 시작되었다. 눈부신 하늘이 빛나고 있던 넬스프루트에서! :)
[글/사진] 로지나 : 캐논 SX40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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