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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체코

한 폭의 그림같던 체스키 크룸로프 Český Krumlov


중세로 흐르는 시간 여행

한 폭의 그림같던 체스키 크룸로프 Český Kruml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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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율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감성이 이끄는 대로 방랑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두고 우리는 흔히 '보헤미안'이라고 말한다. 이 단어는 문화 예술 분야는 물론, 패션이나 삶의 방식으로도 등장하며 
이제는 하나의 스타일이자 장르처럼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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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헤미안'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무엇이 있을까? 재밌게도 체코가 나온다.
보헤미안 Bohemian 은 '보헤미아 사람'이라는 뜻. 사실 보헤미아는 오늘날 체코 서부에 위치한 국가의 이름이었다.
세계 1차 대전 이후 1918년 '체코 슬로바키아'로 묶이기 전까지 꾸준히 역사의 흐름 속에 머물던 보헤미아 왕국.  
이곳엔 유랑민족인 집시가 많이 살았는데, 프랑스인들이 이 집시를 두고 '보헤미안'이라고 부르던 것이 오늘날 '보헤미안'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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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하의 야경

 

그러나 귀족적이고 품위 있는 도시 전경을 자랑하는 프라하만 여행한다면 체코에 남아있는 '보헤미안 감성'을 느끼기가 어렵다.
심지어 프라하는 몇 차례 격정적인 사건 사고를 겪으면서, 정치 역사의 흐름에 따라 차츰 오늘의 모습을 갖춰온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프라하의 이미지 덕분일까. 체코는 헝가리나 불가리아에 비해 '집시의 나라'라는 느낌이 비교적 덜하다. 
자유분방한 집시 감성이 살아 숨쉬는 곳이라기 보다, 로맨틱하고 우아한 귀족 도시같다는 느낌이 먼저 드는 것이다. 
그러나 체코는 엄연히 보헤미아라는 뿌리 위에 꽃 핀 나라고, 우리의 고정관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특유의 감성으로 가득하다.  

그 중에서도 여기, 보헤미안 감성이 살아 숨쉬는 마을이 있다. 

 


 

체스키 크룸로프 Český Kruml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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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남쪽으로 약 180km 떨어진 거리에 자리한 이 작은 마을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 독특한 분위기에 사로잡힌다. 
마치 테마파크에서나 본 듯한 파스텔빛 아기자기함이 광장을 중심으로 빼곡히 들어차있기 때문. 
그러나 테마파크의 그것과 다르게 건물마다 세월의 더께가 잔뜩 눌어붙어 있는 모습이다. 
군데군데 낡고 흠집난 건물에는 그저 흉내만 낸 모조품들과는 차원이 다른 '생기'가 감돈다. 아직도 사람이 살며 가꾸고 있는 땅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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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보르노스티 광장  Svornosti Square 

 

체스키 크룸로프의 시간은 중세에 머물러 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 18세기 건물이라고 하니 그럴 듯한 이야기다.
평범한 상가 건물조차 역사적인 가치가 높기에 체스키 크룸로프는 도시 전체가 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4-16세기에 번창한 곳이기에 과거 보헤미아 왕국의 향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셈이다. 특히 18세기 이후로는 큰 변화없이 이어왔다. 
완전한 보존을 위해 건물 페인트칠조차 반드시 기존과 동일한 색깔로 덧입혀야 했을 정도로 과거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전형적인 관광지면서도 인위적이거나 상업적인 냄새가 덜 풍기는 것은 그런 까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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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광장을 중심으로 기념품 가게, 레스토랑, 민박집 등 여행자들을 겨냥한 상가가 형성되어 있지만, 그 상가가 속한 건물들이 예사롭지 않다.
낡은 돌길을 사이에 끼고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은 마치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 각각의 모양이 달라 개성만점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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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그 규모가 작아서 끝에서 끝까지 이동하는데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골목들을 기웃거리고 찬찬히 둘러보다보면 하루 반나절을 꼬박 투자해도 모자랄 정도로, 곳곳에 이야기가 가득하다.
또 내가 찾았을 때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12월. 모든 도시마다 크리스마스 색(色)이 흘러 넘쳤는데 이곳 역시 예외 없었다. 

 

 

나의 조국 블타바 Vlta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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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룸로프란 이름은 독일어 'krumm' 에서 유래한 것으로,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뜻한다고 한다. 체스키는 '체코의' 란 의미. 
이러한 지명은 도시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단번에 납득이 간다. 마치 우리나라의 하회마을처럼 강이 굽이치며 도시를 감사고 있기 때문. 


체스키 크룸로프를 여행해야 하는 이유는 이 풍경으로 설명된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한 눈에 내려다보는 체스키 크룸로프의 전경은 너무나 낭만적이다. 
수많은 책과 잡지의 표지를 장식한 체스키 크룸로프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올망졸망'이나 '아기자기'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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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S자 모양으로 감싸고 있는 블타바 강과 그 사이에 동그랗게 자리 잡은 도시.  


이 체스키 크룸로프를 휘감은 블타바 Vltava 강은 체코를 여행하는 여행자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체코에서 가장 긴 젖줄인 블타바 강은, 비단 체스키 크룸로프 뿐만 아니라 프라하를 흐르기도 하기 때문. 
프라하에서 가장 낭만적인 장소이자 모든 여행자들이 꼭 가본다는 '까를교' 아래를 흐르는 강이 이것과 같은 블타바 강이다. 


블타바 강은 프라하를 지나 독일로 향한다. 바로 이 블타바 강이 독일 '엘베 강'의 지류인 셈.
블타바를 독일식으로 부르는 이름은 몰다우 Die Moldau. 스메타나의 교향곡 '나의 조국, 몰다우'는 바로 이 블타바 강을 가리킨다. 
플룻으로 강의 원천을, 클라리넷으로 작은 물줄기를, 현악기로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을 표현한 이 교향곡은
체코 출신 작곡가인 스메타나의 보헤미안 정신이 강렬하게 발현한 민족주의 음악으로 유명하다.

 

 

체스키 크룸로프의 상징, 체스키 크룸로프 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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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성에 이어 체코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성인 체스키 크룸로프 성. 
13세기에 처음 지어지기 사작하여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증축, 보수되었다.
그렇기에 고딕 양식, 르네상스 양식, 바로크 양식, 로코코 양식을 모두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이 특징. 
20세기 중반 국가에 귀속되기 전까지, 꾸준히 귀족의 사유지였으며 마지막으로 이 성을 소유했던 것은 슈바르젠베르크 가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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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성탑인 흐라덱 Hradek 성탑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독특한 색감과 외관으로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여행자들은 이 첨탑에 올라 도시 전경을 내려다보는 것이 가능하며 그 밖에도 유료 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성내를 둘러볼 수 있다.
무도회장, 갤러리 등 당시 귀족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화려함'의 극치인 로코코 양식의 극장까지 볼 수 있기에 추천하지만, 
독일어/체코어/영어 가이드만 지원되므로 참고하시라. 대신 성내 안뜰과 정원은 무료로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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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입구. 유로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면 내부까지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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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성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이야말로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체스키 크룸로프에 왔다면 결코 놓쳐서는 안되는' 포토스팟

 

INFORMATION

 

체스키 크룸로프 성

- 주소 : Státní hrad a zámek Český Krumlov Zámek 59 381 01 Český Krumlov Česká republika

- 전화 : +420 380 704 711

- 홈페이지 : http://www.castle.ckrumlov.cz/docs/en/zamek_oinf_sthrza.xml (영어)

 


 

에곤 쉴레 Egon Schiele 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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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스키 크룸로프의 주거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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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들로 된 만곡, 또는 고립된 도시 / 에곤 쉴레 1915년  / 레오폴드 미술관 소장 © Zenodot Verlagsgesellschaft mb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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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다우 강변의 크루마우 (소도시Ⅳ) / 에곤 쉴레 1913~14년 / 레오폴드 미술관 소장 © Zenodot Verlagsgesellschaft mbH

 

체스키 크룸로프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표현주의 화가 '에곤 쉴레 Egon Schiele (1890-1918)' 다.
그는 인간 누구에게나 내재된 은밀한 욕망을 마치 고발이라도 하듯 대담한 선으로 그려나간 화가였다. 


강렬하고 노골적인 화풍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때로는 불편함과 따가움을, 때로는 울림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쉴레.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에게 이 도시는 무엇일까?


체스키 크룸로프는 쉴레에게 있어 '어머니의 도시'. 그의 어머니의 출신지로, 쉴레 자신도 이 도시를 매우 아꼈다고 한다.
그는 1911년 체스키 크룸로프에 거주하기도 했을 뿐 아니라, 몇 점의 관련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집들로 된 만곡, 또는 고립된 도시'는 그 배경지가 어디인지는 구체적으로 나와있지 않으나 체스키 크룸로프의 풍경과 닮았으며 
흔히 소도시 시리즈로 불리는 '몰다우 강변의 크루마우'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체스키 크룸로프를 배경으로 한 그림이다.


1993년 설립된 에곤 쉴레 아트센터에서는 그의 작품은 물론 그의 인생과 가치관에 대해서도 보다 가까이 들여다 볼 수 있다. 

 

 

INFORMATION

 

에곤 쉴레 아트센터 

- 주소 : Široká 71, 381 01 Český Krumlov

- 전화 : +420 380 704 011

- 입장료 : 120 Kc(코루나) / 5 유로 

- 홈페이지 : http://www.schieleartcentrum.cz/ (체코어)

 


 

보헤미안 음식을 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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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스토랑 U dwau Maryí (At two Maries) 

 

보헤미아 왕국을 전승하고 있는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식사를 한다면 '보헤미안 음식'을 맛보는 것이 당연지사. 
이곳이 대표적인 레스토랑들은 대부분 그 옛날 보헤미아 왕국 사람들이 즐겨 먹었던 전통적인 식사들을 재현하고 있다. 
내가 찾은 곳은 '두 성모 마리아'라는 뜻의 레스토랑 U dwau Maryí. 
1950년 건물을 복원하다가 두 개의 성모 마리아 벽화를 발견하여 그와 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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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음식은 주로 수수(millet), 귀리(Oat), 꿀, 달걀, 콩, 양배추, 버섯을 주재료로 사용하며 호밀빵(Black Bread)이 주식이었다고 한다. 
고운 밀가루가 아니라 거친 곡물을 이용한 음식이 특징으로, 식감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았지만 조미료가 비슷하여 맛은 친숙한 편이다.
소금을 많이 사용하다보니 간이 다소 짠 편인데, 곁들인 양배추 절임과 함께 먹으면 입이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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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bbage soup with potatoes and dais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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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uba – puffed barley with mushrooms and vegetables

 

과거 보헤미아 사람들은 아주 이른 시간에 아침을 먹고 오전 10시 무렵에 점심을 먹었다고 한다. 
서민들은 주로 아침식사로서 빵, 치즈, 스프를 소박하게 차렸으며 부유한 사람들은 절인 청어를 와인과 함께 먹는 것이 풍습이었다고. 


점심은 주로 코스로 진행되었으며, 여러 코스 요리를 먹었기 때문에 lunch가 아닌 lunches라는 복수형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스프로 시작해 두 번째 코스는 고기 조림(스튜), 세 번째는 고기 구이(roasted meat)로 이어진다. 
우리나라는 보통 고기 반찬하면 한 상에 한 가지만 올라오기 마련인데, 과연 육류 소비가 높은 유럽답달까. 
저녁은 점심과 유사하나 좀 더 소규모로 진행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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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se Tea  

 

INFORMATION

 

레스토랑 U dwau Maryí (Krčma U dwau Maryí)

- 주소 : Parkán no. 104 381 01 Český Krumlov

- 전화 : +420 380 717 228

- 영업시간 : 오전 11시 ~ 오후 11시 

- 홈페이지 : http://www.2marie.cz/ (체코어/영어/독일어/불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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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롭던 겨울 한낮은 발그레한 불빛과 함께 저물고… 저녁이 오자 광장은 크리스마스 마켓을 찾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강아지, 어린 아이, 노부부가 함께 광장에서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뭘까, 고민하다 금방 답을 얻었다. 
보통 관광지하면 어김없이 시끌벅적한 환락가가 펼쳐지는데 비해 이곳은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가족적인 분위기였던 것.
큰 소리 지르는 사람 한 명 없이,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 속에서 저녁을 즐기는 모습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중세 보헤미아의 시간이 멈춘 도시, 체스키 크룸로프. 

이번 체코 여행에서 단연 '하이라이트'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체스키 크룸로프는 매력적인 동네였다. 
그저 정처없이 광장을 떠돌거나 강변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기만 해도, 온 몸으로 과거의 정취를 흡수할 수 있었던 곳.
한 폭의 그림같던 그 도시가 벌써 그립다. 

 


※ 취재: Get About 트래블웹진

※ 이 글은 Get About 트래블웹진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http://getabout.hanatour.com/archives/161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