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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체코

체코 여행, 감동의 순간을 모아보다



체코 여행, 감동의 순간을 모아보다



나의 2013년, 그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멋지게도) 체코 여행이었다. 

12월 초순 나는 첫 눈이 내리던 체코에 있었고, 크리스마스 마켓을 서성이며 축제 분위기에 한껏 취해있었다.

현실로 돌아왔을 땐 한국도 연말 분위기가 한창. 이어지는 송년회며 크리스마스 이벤트로 정신없는 겨울밤을 보냈다. 


그러나 역시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12월을 가득 채운 것은 역시 '체코'의 감동이었으며,

그 기운을 빌려 지금까지 오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슬며시 입가에 떠오르는 장면 몇 가지가 있다.

대부분 마음에만 새기고 흘려보낸 장면들이지만 운 좋게 사진으로 담은 것도 몇 장 있기에, 오늘은 그 사진들을 모아봤다. 

 




얼마쯤 날았을까




인천과 프라하 공항 사이의 거리는 대략 10시간. 

얼마쯤 날았을까. 한참을 자다가 절로 눈이 떠졌다. 기내는 깜깜. 간간히 영화를 틀어놓은 사람들의 개인 모니터만 빛날 뿐이었다. 

겨울 동유럽은 놀라울 만큼 비수기인데다 평일 출발이었기에 비행기는 텅텅. 그래서 더욱 어둡고 고요하게 느껴졌던 비행기 안. 


조심스레 윈도우 실드를 올리자, 창 밖으론 해가 지고 있었다. 

출렁이는 운무와 얼음꽃이 가녀리게 달라붙은 창문, 그리고 발갛게 빛나는 낮과 밤의 경계. 

(직업 덕에) 수없이 비행기를 타고 내렸지만 왠지 남다른 찡함을 그 때 느꼈다. 


곧 도착할 여행지에 대한 기대와, 고요한 비행기 속에 홀로 깨어있다는 묘한 흥분감, 

그리고 마치 온전히 나만의 것처럼 느껴졌던 창 밖의 비밀스런 풍경. 





성 헨리의 탑




프라하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6시 무렵이었다. 이미 겨울의 체코는 한밤중. 

뻐근한 몸으로 호텔에 도착했을 때, 낡은 돌길 위를 달리는 트램과 그 야경을 무심히 장식하는 첨탑의 존재에 적잖이 놀랐다.


물론 이건 프라하를 상징하는 장면도 아니고, 누군가 '체코의 모든 첨탑을 정복하겠어!' 라는 각오와 함께 순례에 나서지 않는다면

그 어떤 관광객도 '성 헨리의 탑'을 일부러 찾아가는 일은 없을테지만, 내게는 이것이 프라하의 모든 장면처럼 느껴졌다. 


프라하의 첫인상. 

어서 체크인을 해야 하니 호텔로 들어오라는 일행의 독촉이 있을 때 까지, 자리를 뜨지 못했던 밤거리. 





쿠트나호라에 첫눈이 내리면 



▲ 첫눈 내린 쿠트나호라 


간밤에 첫눈이 내렸다. 은의 도시 쿠트나호라도 얇은 눈옷으로 갈아입었다. 

아침 햇살에 더 순백으로 빛나던 쿠트나호라의 모습. 어쩌면 체코에서 가장 낭만적이었던 순간. 





▲ 아무도 없는 길. 봄이 오면 이 거리는 여행객으로 다시 붐빌 것이다. 




▲ 크리스마스를 맞아 무언가 행사를 준비중인 것처럼 보인 아이들. 쿠트나호라 바바라 성당 앞. 


12월 초 첫눈 내린 무렵의 체코 평균 기온은 영하 2도 ~ 영상 5도. 서울과 비슷한 정도의 추위였다.

물론 하루종일 밖을 돌아다녀야 하는 여행자에게는 더욱 매섭기 그지 없는 추위. 

당시엔 '정말 춥다! 한국보다 춥다!'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저 그리울 따름... 





파이프 오르간 라이브 연주를 듣다 


이번 여행은, 취재라는 특수한 입장이었기에 더욱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올로모우츠 성 마리아 성당에서 만난 '파이프 오르간 라이브 연주'였다. 그것도 신부님이 직접. 


올로모우츠는 과거 모라비아국(國)을 대표하는 도시.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의의가 깊은 곳이나, 아직 한국 여행자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지역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우리의 방문이 반가우셨던듯, 흔쾌히 직접 성당을 소개해주시고 파이프 오르간 연주까지 들려주시는 친절을 보여주셨다. 




▲ 올로모우츠 '성스러운 언덕' 위에서


우리가 찾아간 성모 마리아 성당은 올로모우츠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성스러운 언덕' 위에 위치해있다. 

언덕 위는 강풍이 몰아쳤지만, 마치 신이 굽어보는 듯, 빛이 쏟아지는 하늘을 볼 수 있었기에 어딘가 경이롭기까지 했다. 






▲ 올로모우츠 성모 마리아 성당 내부 (위) /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준비하시는 신부님 (아래)


손은 물론 다리까지, '온 몸을 이용해야' 연주할 수 있었던 파이프 오르간. 

가까이에서 실제로 듣는 그 음색은 훨씬 더 웅장하고 풍성했다.
이 성당 내부의 분위기까지 더해져, 우리 모두 숨죽일 수 밖에 없었던 순간. 





▲ 프라하, 미러 채플에서 관람한 콘서트 


파이프 오르간 연주는 프라하에서도 들었다. 바로 체코 국립 도서관이 있는 클레멘티눔. 

그 안에 위치한 미러 채플 Mirror Chapel 에서는 밤마다 작은 규모의 콘서트가 열리는데, 

내가 갔을 때도 마침 바흐와 모짜르트를 테마로 한 콘서트가 열리고 있었던 것. 


교황으로부터 선물받았다는 귀한 거울이 있는 이곳에서, 

파이프오르간과 플룻, 피아노, 그리고 사람의 목소리까지 어우러진 합주를 만나볼 수 있었다. 


사실 이곳의 진정한 감동은 그 윗층의 '바로크 라이브러리 홀' 이었지만,
사진촬영이 엄격히 금지되기에 내 가슴에만 담아오는 걸로... (최초의 성경인 구텐베르크 성경이 보존된 곳이다.)





체코, 음악의 나라 




체코는 기차역마다 주인 없는 피아노가 놓여 있다고 한다. 

그러나 피아노는 잠시도 쉬지 않는다. 오가는 시민들이 모두 피아니스트이기 때문에.


체코 사람들은 타고난 음악가들로, 모두 하나 이상의 악기를 능숙하게 연주 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나 역시 올로모우츠 기차역에서 신나게 징글벨과 재즈를 연주하던 할머니 한 분을 보았다. 


자그마한 체구에도 놀라운 에너지를 뽐내며 신명나게 건반을 두드리던 빨간 코트의 할머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멈춰서서 할머니의 연주를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다. 종종 신청곡을 받으시기도. 





체코, 맥주의 나라 




필스너의 나라, 체코. 체코 맥주 맛있다는 것은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 

나 역시 한 명의 비어러버로서, 체코를 여행하기 전부터 '체코 맥주'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았다.


여행하는 동안 거의 매끼마다 맥주를 곁들였는데 맥주를 마시지 않으면 체코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사명감도 한 몫 했다. 

필스너야 물론 맛있었지만, 너무 많이 마시다보니 나중엔 도리어 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런 사치스런 소리를...)


그래서일까. 다른 맥주와는 확연히 다른 빛깔과 마치 커피처럼 깊고 진한 향기, 입 안 가득 퍼지는 부드러운 맛 덕분에 

나의 No.1 체코 맥주는 쿠트나호라 '다츠키 DAČICKÝ 레스토랑'의 흑맥주였단 말씀.






이곳은 16세기 보헤미안 요리를 재현한 레스토랑. 푸짐하게 차려진 고기(ㅎㅎ)와 함께 흑맥주 벌컥벌컥 들이켰다.

곁에는 따뜻한 벽난로까지 타닥타닥 불타오르고 있으니... 추위는 단번에 잊어버린 최고의 식사였다.





크리스마스 마켓의 추억 



▲ 들뜬 마음에 나 홀로 서성였던 바츨라프 광장 크리스마스 마켓. 핫 와인 한 잔 홀짝이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하다. 




▲ 크리스마스 마켓의 최고 인기는 마리오네트 인형의 거리 연주 


내 생애 이렇게 크리스마스를 열렬히 만끽했던 적이 있던가. 

최고의 크리스마스를 (좀 미리) 보냈다는 것, 그 사실 만으로도 나에게 이번 여행은 가치가 있었다.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이 풍경을 그리워하게 될 것 같은 예감도 들고... 





까를교의 야경 




로맨틱의 정수는 까를교 위에서. 아쉽게도 이 낭만적인 순간을 홀로 맞이해야했다.

이럴 때 참 곁에 없는 소중한 사람들이 더 생각난다.  


어디 이 때 뿐이었을까. 체코 여행 내내 생각나는 얼굴들. 


존재만으로도 압도적인 멋진 성당과 미술 작품을 만났을 땐 내 동생이 생각나고, 

맛있는 음식과 맥주를 마실 땐 술 좋아하시는 아빠가 생각나고,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아기자기한 장식품들을 보면 집 꾸미길 좋아하는 엄마가 생각나고, 

모든 로맨틱한 장소에서는 그저 지금 당장 옆에 없는 애인이 보고싶어 어쩔 줄 모를 정도였다. 


이런 저런 이유로 홀로 여행할 때 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존재는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법이지만, 

이번 여행만큼 그들이 사무치도록 그리운 적은 없었다. 


그 정도로, 나에게 뜻깊은 여행이었다는 반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