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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대한민국

2012 강릉 커피축제를 다녀와서 - 실망도 했지만 여운은 길었다.





2012 강릉 커피축제

실망도 했지만 여운은 길었다 ~




사실 전부터 가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관련 포스팅은 여기) 원래 같이 가고자했던 일행과 날짜도 안맞고 바쁘기도 해서 단념했었는데, 어찌저찌 가게 된 강릉 커피축제. 커피에다 축제라는 이름이 붙으니 괜히 기대가 더 부풀어 신나게 달려갔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족 반, 아쉬움 반" 


만족스런 이유야 다양한 원두커피를 시음해볼 수 있었는데다 예쁜 카페에서 바다 보면서 커피도 마셨으니 좋았기 때문이고, 아쉬움의 이유는 솔직히 직구를 던져 말하자면 재미가 없었기 때문... '커피축제'라는 매력적인 키워드 때문인지, 포탈사이트에서 검색순위도 높았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축제의 첫째 조건인 '재미'가 이렇게나 없어서야. 아마 커피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컨텐츠가 대부분이라 '그들만의 리그' 같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 강릉문화예술관 실내체육관




1. 나에겐 빈약했던 프로그램


강릉 커피축제의 일정은 무려 열흘. (10월 19일~28일) 이렇게 개최 기간이 긴 축제들의 특징은 프로그램이 곳곳에 산재해있고, 참가객이 스케쥴을 짜 순회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영화제도 그러하듯이, 극장을 쫓아다니며 영화를 볼 때 외에는 거리에서 축제 분위기를 그다지 느낄 수가 없다. 그래서 '축제'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화려함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겐 살짝 실망스런 인상을 남길 수 밖에 없고. 그러한 실망감을 만회하기위해 더 더욱 신경쓰는 것이 개막식/폐막식과 같은 메인 프로그램 아니던가.


커피축제는 영화제와 그 모양이 닮았다. 극장을 쫓아다니듯, 카페들을 쫓아다니며 세일이나 이벤트를 즐기는 것. 그러나 그 내용이 턱없이 소소하고 (원두 20% 세일, 스탬프 랠리 기념품 증정 이런 수준) 그 안에 참가객을 매료시킬 프로그램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메인 행사장이 두 군데 있긴 하지만, 그곳에서 펼쳐지는 이벤트라곤... 








이런 홈카페 용품관과







바리스타 대회와 같은 것들...



바리스타 대회, 재밌어보이는데? 직접 관람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물론 직접 관람할 수 있고, 관심이 많다면 나름 흥미진진할 수 있다. 그러나 바리스타 대회라는 것은 피겨 스케이팅 쇼처럼 보기에 아름답거나, 축구경기처럼 박진감 넘치거나, 댄스경연대회처럼 흥겹지도 않다. 물론 입담 넘치는 사회자가 중계를 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참가자들이 땀 흘리며 만든 커피 한 잔을 과묵한 전문가들이 묵묵히 심사하는 모습만 바라볼 수 있을 뿐인 것이다. 내가 모든 프로그램을 본 것은 아니지만, '골든커피어워드'를 잠깐 본 결과, "흐응~ 저런 것도 하는구나." 정도의 끄덕거림말곤 다른 감상을 갖기 어려웠다. 즉, '바리스타 대회'를 한 번쯤 보고싶긴한데 평소에 어마어마한 관심을 갖고 있었거나 본인이 커피 업계에 종사하지 않는 이상, 크게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이야기. 그 밖의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이러한 '대회'거나 '세미나'거나 커피콩을 전시하거나 시화, 꽃꽂이 전시회 정도.






바꿔말하면, 내가 바리스타거나 커피 업계 종사자라면 충분히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라는 뜻이니 오해하지 마시기를. :) 

나처럼 '커피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평소 즐겨 마시기 때문에 커피축제도 재밌어보여서 와 본 사람'들에겐 구미가 당기지 않는 프로그램이라는 뜻이다. 






* 강릉 커피축제 프로그램 *






* 강릉 커피축제,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홈페이지로 

=> http://www.coffeefestival.net/






@ 강릉항 요트마리나



강릉 커피축제의 행사장을 크게 나누자면 두 군데. 강릉문화예술관(실내/실외)과 강릉항의 요트 마리나. 물론 메인은 강릉문화예술관이고, 요트 마리나는 강릉한 주변의 카페촌을 컨트롤하는 본부같은 느낌으로, 굉장히 소규모로 잡화같은 것을 팔거나 핸드드립 체험을 할 수 있는 코너가 있었다. 하지만 바닷가에 위치해있는만큼, 날씨만 좋으면 커피 한 잔 테이크아웃해서 바닷가 산책로를 거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커피 시음만큼은 실컷 할 수 있었다.






2. 다소 썰렁한 풍경?









앞서 말한 행사 프로그램은 커피에 대한 관심도에 따라 호불호가 충분히 나뉠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상설 부스들은 어땠을까? 

평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금요일 오후 4시 무렵인데. 메인 행사장 중 하나인 강릉문화예술관의 잔디광장은 썰렁하기 그지없다. 저 멀리서 십센치의 '아메리카노'가 꿈 속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가운데, 천천히 둘러보니 과연 썰렁할만도. 그다지 매력적인 컨텐츠가 없다는 것이 결정적인 흠. 한과를 팔거나, 도자기 체험 등을 해볼 수 있긴 한데 누가 커피축제까지 와서 이런걸 한단 말인가... 이렇게 말하면 좀 냉정하긴 하지만, 뭔가 커피와 그닥 연결고리가 없는 부스들이 구색 맞추기 식으로 열려있는 느낌이었다. 나 역시 5분 만에 흥미를 잃고 곧 자리를 떴으니, 사람이 없는 것도 이해가 된다. 




물론 핸드로스팅을 체험해보거나 핸드드립을 배울 수 있는 교실도 있음!



이래저래 장점도 단점도 있는 커피축제지만 전체 그림을 평가하자면 '재미없음'

오직 커피축제만을 위해 강릉을 찾는다면 나처럼 일반 관람객의 경우 크게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커피축제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뭘까? 









▶▶▶ 강릉 커피축제, 재미있게 즐기기 




1. 다양한 원두커피 시음


커피축제 자체의 장점을 꼽자면 평소 좋아하는 원두부터 쉽게 맛볼 수 없는 원두까지 다양한 원두커피를 시음해볼 수 있고, 원한다면 세일가격으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도 있다는 점. 물론 커피라는 음료의 성격상, 무한정 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 잔쯤 마셨더니 속이 울렁거리더란;) 평소 커피에 목이 말랐다면 원없이 마실 수도 있겠다. 다만 요즘 같은 시대에 동네 핸드드립 전문점만 가도 원 없이 리필해가며 다양하게 테이스팅 해볼 수 있는데, 강릉까지와서 원두 맛보기엔 좀 부족하지 않을까 싶기도. 







비교적 생소한 원두도 많다.



그래도 세일가에 원두를 구매할 수 있으니 커피 매니아들에겐 혹하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 때 '케냐 피베리'를 시음해봤는데, 굉장히 신선하면서 신 맛이 강하고 독특한 느낌이었다. 알고봤더니 '피베리'란 보통 두 알씩 달리는 커피 체리에서 생두가 하나만 열리는 변종 커피를 말하는데, 두 알 분의 향과 맛을 한 알이 농축하고 있다하여 커피의 에센스라고도 불리는 종류라고. 이런 내용을 진작 알았으면 세일가에 한 봉지 사올 것을 그랬다며. :) 








특히 인상적인 경험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매가로 팔린 스페셜 원두, 파나마 게이샤를 맛본 것. 한 잔에 9000원이라는 묵직한 가격에 한 번 놀랐고,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했던 독특한 맛에 두 번 놀랐다. 원두를 따로 사오고 싶었지만 워낙 생산량이 극히 적어 귀한 탓에 원두를 팔진 않고, 이렇게 한 잔씩 맛볼 수 있는 것. 향이 굉장히 풍부하고 과일처럼 달달하면서도 맛은 시큼하고 쓴 여운이 오래가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평소 내가 마시던 커피들에 비해 낯선 이미지. '게이샤'라는 이름에 처음엔 일본에서 온 원두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에티오피아 서남쪽에 있는 숲 게이샤(Geisha)에서 딴 이름이라고. 


이처럼 평소 쉽게 맛보지 못하는 다양한 원두를 시음할 수 있다는 점만 보면 커피 축제도 매력적이긴 하다. :)






2. 다양한 카페를 찾아서





강릉이 언제부터 커피로 유명한 도시가 되었을까? 그 근저에 마케팅과 상술이 깔려있다 할지라도,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여유는 분명 강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운치일 것이다. 게다가 그 커피가 맛있기까지 하다면, 한 잔 값이 아깝지 않을 듯. 강릉이 좋은 까닭은, 해변을 따라 겉보기에도 예쁜 카페들이 줄지어 서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맛으로도 유명하기 때문. 


사진 속 커피커퍼는 독특하게도, '아메리카노' 전문점. 국내 최고의 아메리카노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곳으로, 우리가 흔히 마시는 아메리카노에서 더욱 업그레이드 된 다양한 버젼의 아메리카노를 판매한다. 메뉴판 속 커피커퍼 아메리카노는 총 4가지. 각각 강배전(다크 로스트), 중배전(미디엄 로스트), 약배전(라이트 로스트)된 3종류의 싱글 오리진 아메리카노를 판매할 뿐 아니라, 고급 생두인 코나와 블루마운틴을 블렌딩한 코블 아메리카노까지 마셔볼 수 있다. 특히 코블 아메리카노가 궁금했지만, 방금 파나마 게이샤를 마시고 나오는 길이라 더 이상 커피를 마실 수 없었다는 것이 함정. (^^;) 다음에 다시 강릉항을 찾게 된다면 커피커퍼 아메리카노를 꼭 마셔보기로~ :)









3. 강릉 여행, 그 자체를 즐길 것 



사실 커피축제가 아니더라도 강릉은 그 자체로 매력만점 여행지다. 아름다운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싱싱한 회를 먹을 수도 있겠고, 오죽헌이나 하슬라 아트월드와 같은 유명 관광지를 둘러볼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강릉 시내를 벗어나 근교로 차를 몰고 나가면, 커피매니아들의 성지처럼 여겨지는 테라로나 커피공장이나 박이추 선생의 '보헤미안' 카페도 찾아갈 수 있다. 워낙 맛있는 것도 많으니 맛집 기행을 다니며 중간중간 강릉 유명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 그게 커피축제를 즐기는 묘미 아닐까? 축제기간에 강릉 카페를 찾으면, 대부분 할인행사 및 이벤트를 조촐하게 열고 있으니 겸사겸사 즐거운 추억거리가 생기는 셈이다. :)



2012/11/07 - [Travel/우리나라] - 강릉여행 '맛'탐방! - 감자옹심이, 물회, 막국수



개인적으로는 내년 커피축제는 좀 더 일반 관람객들도 배려한 재미있고 알찬 볼거리가 있었으면 좋겠고, 축제라는 이름에 걸맞는 분위기가 거리에도 형성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커피를 소재로 한 영화들을 모아 야외 영화제를 한다거나, (짐 자무쉬 감독의 <커피와 담배> 같은) 커피 한 잔 들고 스탠딩으로 즐길 수 있는 오케스트라 공연이나 인디밴드의 공연이 있으면 어떨까?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보며, 촬영지가 강릉이란 이야기에 풍경을 더욱 눈여겨 봤더랬다. 어쩐지 낯이 익은 장소들이 휙휙 지나간다. 어디 그 영화 뿐이랴. 강릉을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는 이미 내 안에도 있지 않은가. 언제가도 좋은 곳, 또 가도 여운이 긴 곳. 강릉은 그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