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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체코

[체코 기차여행] SC펜돌리노 타고 올로모우츠로



겨울 기차는 우리를 싣고 올로모우츠로 간다

 

- 체코 기차 여행 이야기 - 



 

기차는 누군가에게 항상 낭만을 싣고 달리는 존재다. 그 '누군가'에는 나도 포함된다. 

파노라마로 흘러가는 차창 밖 풍경, 절로 꾸벅꾸벅 졸게 되는 얕은 흔들림, 먼 곳에서 속삭이는 사람들의 작은 목소리…

거기에 이어폰을 타고 들려오는 나만의 BGM까지 더해지면, 이 모든 그림이 한 편의 로드무비처럼 더없이 드라마틱하게 느껴진다. 


하물며 우리나라에서도 기차여행은 내게 로망의 집합체이거늘, '유럽'에서의 기차여행에 시작 전부터 설렜음은 두 말 하면 잔소리다. 

아침이 채 오지 않은 이른 시간, 프라하 중앙역으로 가는 길목부터 내 발걸음은 들뜨기 시작했으니.


그 겨울, 나의 체코 기차 여행 이야기를 살짝 풀어본다. 


 


 

프라하 중앙역 Hlavní Nádraží




오늘의 목적지는 체코 동부에 위치한 교육도시 '올로모우츠 Olomouc' 

우리에겐 비교적 낯선 지명이지만, 사실 이 지역은 체코는 물론 유럽 역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의의를 갖는 지역이다. 


오늘날 체코의 전신은 보헤미아 왕국. 그 보헤미아 왕국의 전신은 대(大)모라비아 왕국 Great Moravia 이었다. (833~906) 

서(西)슬라브족이 최초로 세운 국가였으나, 이윽고 주변국의 침입으로 인해 채 백년을 가지 못하고 멸망하고 만다. 

그러나 모라비아는 쇠약한 명맥을 이어 왔고, 1918년 슬라브 민족운동을 통해 보헤미아와 함께 체코 공화국 구성 일원이 되었다.


지금은 체코 안에서도 과거 모라비아 영토였던 땅을 '모라비아 지방'으로 부르며, 그 민족적 의의를 보존하고 있다. 

올로모우츠는 바로 이 모라비아왕국의 수도였던 곳으로, 모라비아 지방을 대표하는 도시로서 유명하다. 

 

 




▲ 프라하 중앙역 풍경 

 


체코 철도의 요충지인 프라하 중앙역은 넓고,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프라하 중앙역의 체코 이름은 흘라브니 나드라찌 (Hlavní nádrazí). 매표소는 물론 열차 안내 센터, 프라하 관광 안내 서비스 등이 있다. 


체코 국내를 여행할 때 가장 많이 이용하는 역이자, 가장 많은 국제선 기차가 서는 곳이다. 

프라하의 또 다른 주요 기차역으로는 나드라찌 홀레쇼비체 (Nádrazí Holesovice) 역이 있는데, 

보통 베를린을 비롯하여 체코 북쪽에서 오는 일부 열차의 종착역이 된다고 한다. 

 

 


 


여느 기차 역처럼, 간단히 아침을 해결할 수 있는 패스트 푸드점, 커피숍, 샌드위치 가게 등이 있었으며

먼 거리 가는 길 지루하지 않도록 책과 잡지, DVD를 판매하는 매대도 준비되어 있었다. 

 

 



▲ 입마개를 착용한 개. 기차 여행 준비 완료? 혹은 누군가를 마중나왔을까?

 


체코에는 개가 참 많다. 그것도 제법 덩치가 큰 중형, 대형견들이. 

위풍당당한 발걸음으로 산책길에 나선 개들을 잘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입마개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혹시라도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미리 입마개를 하는 것이 매너인 셈. 

내게야 사랑스러운 '강아지'지만 누군가에게는 위협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위와 같은 입마개는 비단 체코 뿐만 아니라 건전한 반려견 문화가 정착한 서양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플랫폼은 이미 어슴푸레 아침으로 물들어 있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큰 캐리어를 끌고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비엔나나 부다페스트로 향하는 여행자들일 수도 있고,

간소한 차림과 시큰둥한 얼굴을 한 사람은 그저 출근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목적지가 어디일지 상상하며 나는 슬그머니 그 대열에 합류, 나를 태워 갈 기차를 기다렸다. 

 

 



▲ 나는 7시 29분 발(發), 오스트라바 Ostrava 행 기차를 타고 올로모우츠로 향했다. 

 


안내판을 올려다보면 낯선 체코어에 당황할 수도 있지만 너무 놀라지 말자. 출발 안내판 ODJEZD에는 열차 종류, 열차 번호, 

행선지와 함께 출발 시간이 적혀 있으니 내 티켓을 잘 확인한 뒤 해당 플랫폼으로 향하면 된다. 


만약 같은 시간, 같은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더라도 열차 종류가 다르면 차액이 발생하거나 도착 예정 시간이 달라지니 잘 확인할 것. 

우리나라에도 무궁화호, 새마을호, KTX 가 있듯이 체코에도 열차 종류가 완행부터 급행까지 다양하다.


내가 탄 기차는 SC 펜돌리노(Super City : Pendolino)로, 우리나라의 KTX처럼 가장 빠른 신형 열차로 대도시 간 운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 밖에도 모든 역에 정차하는 지방 열차 오소브니(Os), 주요 소도시에 정차하며 가장 일반적인 장거리용 기차 리슐리크(R) 등이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아래 '유레일' 홈페이지를 방문해보자.


※ 유레일 체코 철도 정보 : http://kr.eurail.com/trains-europe/trains-country/trains-czech-republic

  

 



▲ 티켓의 모습. 올로모우츠까지의 소요시간은 약 2시간 20분이다. (SC 펜돌리노 기준)

 


 


넓고 쾌적한 열차 내부의 모습. 신형 열차라더니 깔끔한 모습에서 '최신'의 냄새가 난다. 

우리나라 KTX의 특실 모습과 많이 닮았다 했더니, 펜돌리노와 프랑스의 떼제베,  KTX는 모두 같은 협력사의 작품이라고. 

 

 


 


덜컹, 하고 기차가 출발하기 시작하자 곧 승무원이 물을 서비스로 지급해준다. 스파클링과 논스파클링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곧 이어 신문 카트가 지나간다. 비즈니스맨으로 보이던 옆자리 아저씨가 신문을 구매하더니, 곧 활자 세계에 푹 빠져들었다.

 

 


 


그러나 나는 신문 속 이야기 보다 창 밖 풍경이 더 흥미로웠다. 마침 창 밖으로 해가 뜨고 있었기 때문.

체코의 겨울은 아침이 늦게 찾아오기에, 8시 무렵에야 해가 뜨며 세상을 붉게 물들인다. 

그러고보니 기차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처음이었다. 

  


 


 

아침을 맞아, 잠에서 깰 겸 모닝 커피를 마시러 열차의 카페칸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바 Bar 라니! 

'기차 여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소박한 매력이 무색하게도, 체코에서의 기차 여행은 제법 럭셔리한 느낌. (^^;)

  




 


에스프레소는 35CZK  (한화 약 1,800원), 카푸치노는 39CZK (한화 약 2,000원), 라떼 마키아또는 45CZK (한화 약 2,300원) 정도.

가격은 2013년 12월 기준이며, 모두 유로화(EUR)로도 계산이 가능하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셔주니 진정한 아침이 열리는 듯하다. :)  





바람 불던 올로모우츠 Olomouc




그렇게 도착한 올로모우츠는 지금까지 만나봤던 체코의 다른 도시들과 또 다른 인상. 

화려한 프라하, 고풍스러운 쿠트나호라, 아기자기한 체스키 크룸로프와는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었다. 


모라비아 왕국의 역사를 지닌 이곳은 프라하에 뒤지지 않을 만큼 많은 문화 유산을 보유한 도시다. 

지금은 체코를 대표하는 명문대가 위치하고 있어, 교육도시이자 대학도시로도 유명하다. 

 




▲ 올로모우츠의 상징 '성 삼위일체 기념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르니 광장의 '성 삼위일체 기념비' 

유럽의 대부분 광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이 석주는,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흑사병 (페스트) 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추모하고

동시에 신에게 자비를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올로모우츠의 성 삼위일체 기념비는 전체 높이 35m라는 거대한 규모, 유려한 바로크 양식, 

모리비아의 예술가 온드레이 자흐너의 작품 등 다양한 의의를 지니기에 가장 가치있는 기념비로 인정받아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 올로모우츠 시청사의 천문시계

 

프라하 구시청사의 '천문시계'를 있는 것처럼 올로모우츠에도 유명한 천문시계가 있다. 바로 올로모우츠 시청사의 천문시계가 그것.

그러나 프라하의 천문시계를 본 사람이라면 올로모우츠의 천문시계는 그 모양이 매우 독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프라하는 12사도의 모습이 차례로 등장하며 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것에 비해, 올로모우츠는 평범한 노동자들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 프라하 구시청사의 천문시계


프라하의 천문시계가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면, 올로모우츠의 천문시계는 '사회주의' 이념을 담고 있기 때문.

과거 사회주의 국가였던 체코의 편린을 이곳 올로모우츠에서 볼 수 있는 셈이다. 그것도 매우 귀엽(?)게.

 

 



▲ '성스러운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전경 


 



▲ 성모 마리아 성당 외관 (위) / 성모 마리아 성당 내부 (아래) 

 

올로모우츠를 대표하는 성당으로는 모라비아 지방에서 가장 큰 파이프 오르간을 보유한 '성 모르지츠 성당'과 

올로모우츠 시내를 굽어보는 듯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성모 마리아 성당'이 있다. 


특히 성모 마리아 성당은 유려한 내부 장식과 경건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며, 성스러운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또한 운치가 있다. 

이 날은 특히 유럽 전역에 강풍이 많이 부는 날씨였는데, 언덕 위에서 무서운 소리를 내며 휘몰아치는 강풍을 온몸으로 맞으니,

어쩐지 자연이라는 신 앞에 발가벗고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오묘하기도 했다.   

 




 

다시 기차를 타고 프라하로 돌아가던 그 날 저녁. 

올로모우츠 기차역은 프라하 중앙역의 화려함에 비하면 아주 작고 소박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뜻깊은 여행의 명장면과 조우했다.

바로 기차역 내부에 흘러 퍼지던 경쾌한 피아노의 음색이었다. 


그 피아노를 치는 것은 자그마한 체구의 어느 할머니.

마치 시장이라도 보고 돌아가는 듯 일상적이기 그지없는 복장과 표정으로 '징글벨'을 연주하고 계셨다. 그것도 신나는 재즈 리듬으로.


알고보니 이 피아노는 주인 없이 놓여있는 것으로, 체코 대부분의 기차역에 이런 피아노가 한 대씩 있다고 한다.

그럼 누구든 오가는 사람 중 피아니스트를 자처하며 자리에 앉아 수준급의 피아노 솜씨를 뽐내며 피아노를 친다고 한다. 

음악이 생활이자 보편적인 취미인 체코 사람들의 멋스러움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내게 강렬한 인상과 향기 진한 추억을 남긴 도시, 올로모우츠. 

유럽 특유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은 없을지라도 구석구석 숨겨진 이야기, 뜻깊은 장소들이 많아 발굴하는 재미가 있는 곳이었다.


체코의 또 다른 표정이 보고싶다면 꼭 한번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기차를 타고 말이다. :)

 

 


INFORMATION

 

1. 체코 철도 공식 홈페이지 : http://www.cd.cz/en/ (영어)

2. 유레일 패스 홈페이지 : http://kr.eurail.com/

3. 레일유럽 홈페이지 : http://www.raileurope.co.kr/

 

 

※ 취재: Get About 트래블웹진 

※ 이 글은 Get About 트래블웹진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http://getabout.hanatour.com/archives/162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