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ravel/대한민국

2013년, 고궁에서 봄을 맞이하다. 나의 창덕궁 꽃놀이

 

고궁의 봄, 창덕

다시 돌아오지 않을 2013년, 봄의 순간을 기록하며

 

 

 

 

봄 이야기를 꺼내기가 무색하게, 오늘 한낮 온도는 무려 27도에 다다른다.

참고로 내 고향 대구는 29도라는 소문. (습관처럼 대구 날씨도 항상 어플리케이션으로 확인하고 있는 나...)

내일은 비 소식으로, 기온이 다소 내려갈 듯 하지만 정녕 '초여름'이 도래한 듯 하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오늘만큼은 나의 2013년 봄 이야기를 풀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서둘러 블로그를 두드린다.

 

 

봄은, 참 좋다.

 

웅크린 채 추위를 버티느라 뼈마디가 딱딱하게 굳었던 몸도 활짝 개어 햇살과 바람을 반갑게 맞이하는 계절.

연두빛 생명이 퐁퐁 눈을 뜨고, 보드라운 꽃잎이 흩날리는 계절.

시인들이 가장 많이 노래한 계절이자, 누구나 님처럼 오매불망 기다리던 계절, 봄. 

 

매년 봄이 짧게 느껴지는 것은 실제로 겨울과 여름이 길어져 그 자리를 빨리 빼앗기는 탓도 있겠지만, 

워낙에 기다리고 노래하던 계절이라 아쉬움도 여운도 두배이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나 역시, 계절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꼭 제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시간이 대체 언제 흘러갔는지' 몰라서 초조해지는 마음의 습관이 있기에,

계절감 가득한 이벤트는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

 

올 봄도 꽃 소식이 들려오기 몇 주 전부터 '꽃놀이를 어디서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가장 봄을 함께 맞이하고 싶은 님과 일정도 맞춰야하고,

 그 일정에 맞춰 날씨도 좋아야 하고, 모처럼이니 꽃도 만개해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인파로 정신없이 겉만 핥고싶지는 않았으니 아무렴 고민할 수 밖에.

 

그러나 약속의 날은 다가오는데 예년보다 늦어지는 벚꽃 소식.

결국 처음 '후보'로 생각해뒀던 벚꽃 명소들을 모두 포기하고 플랜 B를 세웠다.

그동안 봄하면 벚꽃이라 찰떡같이 생각했지만, 이 봄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이 비단 벚꽃만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찾아간 창덕궁

 

 

 

고궁의 봄. 말만 들어도 참 운치있다.

내가 서울을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인 고궁.

 

궁궐마다 특히 어울리는 계절이 있는데 (매우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경복궁은 가을, 창경궁-종묘는 여름, 덕수궁은 겨울. 그리고 이 창덕궁은 특히 '봄'에 제격인 듯 느껴진다.

그 이유는 앞으로 천천히 풀기로 하고, 오늘은 창덕궁의 봄을 이야기하자.  

 

 

 

 

 

 

바람은 좀 쌀쌀했지만 다행히 하늘만큼은 새파랗게 빛나던 4월 둘째 주.

아직도 기승을 부리는 겨울의 마지막 몸부림 덕에 사람들 옷차림이 아직 두텁다.

 

 

창덕궁을 짧게 소개하자면

 

창덕궁(昌德宮)은 태종 5년에 지어진 조선시대의 궁궐로, 사적 제122호로 지정되어 있다.

가장 한국적인 궁궐로, 우리나라 고궁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법궁인 경복궁보다도 더 오랫동안 임금들이 거처한 곳이며, 자연친화적인 설계 덕분에 많은 임금들이 '가장 좋아한' 궁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는 흔히 비원(秘苑)이라 불리는 숨겨진 정원을 보고자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오고 있는데,

사실 '비원'은 일제가 남긴 잔재의 이름이므로, '후원'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고 한다.

 

 

창덕궁 관람하는 법은

 

창덕궁은 보통 일반 관람과 후원 특별관람으로 나뉜다.

일반 관람은 입장료가 3,000원이지만, 후원 특별관람은 거기에 5,000원이 더 추되는데 (성인 기준)

관람 가능한 시간과 인원이 정해져 있어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관람하기가 다소 어렵다.

이토록 까다롭게 관리하는 것은, 그만큼 후원의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쉽게 훼손될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창덕궁 자체는 면적이 넓지만 사실 '일반 관람'으로 볼 수 있는 곳은 제한 되어 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창덕궁의 면모를 확실히 느끼려면 해설사와 함께 하는 후원 특별관람까지 하는 것을 추천한다.

특별관람은 휴궁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9회, 90분간 진행된다. (일반관람은 휴궁일 제외 자유관람)

 

후원 특별관람은 굉장히 인기가 있으므로, 주말엔 특히 매진이 빠르다.

당일 무작정 찾아가 표를 구해봤자 전 회차 매진이라는 가슴아픈 소식만 들을 수 있으니

후원 특별관람만큼은 아이돌 콘서트 표 구하는 것 마냥 빠른 예약이 필수다.  

 

 

 

 

 

 

나 역시 매진으로 인해 후원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한 명...

그러나, 후원을 보지 못하더라도 창덕궁 일반관람 역시 충분히 아름다우니 너무 실망하지 말자.

 

 

창덕궁 찾아가기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가 가장 가깝다. 도보 5분. 종로 3가 역에서 내려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도보 10분~15분 정도.

주변에는 북촌 한옥마을부터 삼청동, 인사동까지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주말 데이트 코스로도 참 좋고, 가족 나들이에도 딱이다.

삼청동 - 북촌 - 인사동 이 일대는 내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지역 중 하나.

 

  

※ '북촌 한옥마을 나들이' 다시 읽기 (http://rosinhav.tistory.com/418)

 

 

또 창덕궁은 창경궁 - 종묘와도 접하고 있어, '고궁 나들이'에 푹 빠져 하루를 보내고 싶은 사람에게도 추천이다.

창덕궁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이 알고 싶다면 네이버 캐스트의 기획 기사를 읽어보자. (바로가기 클릭)

 

 

 

 

창덕궁 꽃 나들이

 

 

 

 

 

꽃이 만발한 봄날의 고궁. 창덕궁에서 가장 인기있는 꽃은 단연 '만첩홍매화'다.

토실토실한 꽃송이가 사탕처럼 주렁주렁 열려있는 홍매화가 존재만으로도 향긋하다.

 

보통 매화나무에는 풋사과처럼 청순한 흰꽃이 피는데, 홍매화는 진달래같은 분홍빛 꽃잎이 겹겹이 피어있는 것이 특징.

이 무렵에도 아직 만개하진 않아서 꽃봉오리도 많았는데 전부 그 얼굴을 드러내면 얼마나 화려할지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어디 그 뿐이랴. 벚꽃, 산수유, 매화, 개나리, 진달래.. 

저마다 빛깔을 뽐내는 다양한 꽃들이 흐드러진다. 사방에 봄이 메아리치는 기분이 절로 든다.

 

휴대폰 카메라로 기념 사진을 남기는 연인들부터, 삼각대에 주둥이가 커다란 카메라를 짊어진 사진족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봄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슬며시 나도 그 행렬에 동참해본다.

파란 하늘을 캔버스 삼아 하얀 꽃, 노란 꽃, 붉은 꽃을 담다보니 나도 봄빛으로 물든다.

 

혼자 몰두하며 한참을 사진 찍다가 퍼뜩 정신이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같이 온 짝꿍을 너무 방치한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웬걸, 나보다 더 신명나게 꽃사진을 찍고 있는 것 아닌가. 내 사진보다 꽃사진에 더 열정을 보이다니...

사진첩 가득한 꽃사진에 절로 실소가 흘렀다. 등을 맞대고 또 부지런히 오늘의 봄을 담는다.

 

 

 

 

 

 

어른이 되고서 가장 무서웠던 일은 하루가 너무 짧다는 사실이었다.

분명 똑같은 그릇에 담긴 시간이었을텐데, 커진 몸집 탓일까 아님 급해진 성격 탓일까.

소화할 틈도 없이 시간을 마구잡이로 삼키고 있는 듯한 일상이었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보면 벌써 여기. 벌써 이만큼. 그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길 여러번.

 

그렇게 많은 계절을 흘려보냈다. 기록해두지 않으면 떠올릴 수 조차 없다.

그런 탓에, 여름의 문턱에서 기어이 봄을 기록해본다. 이 기록도 사실 늦었다.

어떤 농담을 나눴는지, 잠시 앉았던 그 벤치에서 무슨 이야길 했는지, 바람 냄새는 어땠는지, 꽃잎 감촉은 어땠는지.

정녕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이 이미 흐릿해진 뒤에, 기억을 쥐어 짜내어 남기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추억은 시간에 풍화된다. 뒤늦게 떠올리려해도 온전히 모양을 갖추기 어렵다.

다른 기억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덧칠이라는 점이 다행이지만, 그래도 참 아깝기 그지없다.

 

그렇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려고 시작한 블로그였는데, 잠시(?) 본분을 잊었다.

다시 수다쟁이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

 

기다려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하러 달려가보자.

 

 

 

 

 

2013년, 고궁에서 봄을 맞이하다. 나의 창덕궁 꽃놀이 -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