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면계정이었던 티스토리 아이디를 깨워 간만에 블로그 문을 열어본다. 

철저히 오프라인 중심의 삶을 살았으나 역시 기록은 온라인에 해야 제맛.. 이라기 보다는 손이 덜 아프다.


'로지나' 라는 필명이 매우 아득하게 느껴진다. 과거에 이 이름으로 제법 수다를 떨었었는데.. 

가끔 그리움에 예전 글들을 읽어본다. 이십대 중반부터의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너무 여과없이 글을 써댔던 탓인지 막 소름돋고 (오글거리고) 애처롭기도 하다. 

특히 그 때의 고민을 아직까지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다. 오 마이.. 이 어찌 발전없는 인간인가;


아 나름의 긍정적 발전은 있었다. 

소식이 뜸하던 그 동안, 나는 이제껏 나를 괴롭히던 것의 정확한 정체를 알았고, 받아들였고, 극복했다(하는 중이다). 


그 동안 나는 나를 괴롭히던 조급함, 우울함, 무기력함, 자괴감, 패배감이 내 내면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내가 약하고 못났고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물론 주변의 다정한 벗들이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었지만 

그 말에 "그렇구나" 하던 순간에도 이건 어리광일 뿐이며 회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마음 속 어딘가에서 생각했음을 고백한다.

나는 왜 이리 약할까 못났을까 게으를까- 스스로를 탓하며 증오하며 한심해하면서 내내 마음이 삭아들어갔다. 


사위어진 마음을 안고 나는 도망치듯 회사를 떠났다. (쫓겨났다?) 2014년 7월이었다.

말도 안되는 보복성 인사발령 공지를 보면서 나는 두려움이나 분노보다 속 시원함을 먼저 느꼈다.

대리님 어떡해요? 나와 같이 공지를 본 이들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을 때도

아 저 퇴사할거에요!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그렇게 말했다. 

등 떠밀려 회사 밖으로 나왔지만, 내심 그걸 바라고 있었던 것처럼 숨통이 트였다. 


물론 막막함은 있었다. 밥줄이 끊어졌다는 것, 밥벌이를 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내 권리를 뺏기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것에 대한 분노도 있었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누군가는 노동법의 힘을 빌리라며 강경히 말했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회사'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 곳은 나를 죽이는 공간이었다. 나는 겨우 탈출했다. 

용기가 없어서 지금까지 질질 끌었는데 마침 운이 좋았다. 이런 안도감까지 느끼고 있었으니까.


공황장애를 겪는다거나 과호흡이 일어난다는 등, 뚜렷하게 인지 가능한 고통은 없었지만 

그 때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아주 조금씩, 빗물에 바위 구멍 뚫리듯이,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는 회사를 뛰쳐나온 백수의 흔한 스토리와 같다. 
퇴직금과 실업급여로 여행도 다니고 취미생활도 실컷 하며 잉여의 삶을 즐겼다. 한동안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신명나던 나날도 딱 1년.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나는 왜 이렇게 된걸까? 퇴사가 도망은 아니었을까? 

다들 그 정도 스트레스는 받으며 살고 있을텐데, 왜 나는 못견뎠을까? 이제 난 어떡하지? 


고민의 핵심은 '나는 뭐가 문제일까' 였다. 

크고 작은 고민은 누구나 하겠지만 무난히 견디며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분명 많다. 

사회적 관계, 조직 순응적 태도, 암묵적 규칙들을 불편해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여기며 인생의 무게를 받아들이는 사람들. 


난 왜 그렇게 못했을까. 왜 그리도 참을성이 없었을까. 

나를 매 순간 죽이고 있던 우울증과 싸워 이겼어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의식 과잉은 아니었을까.  

내가 어른스럽지 못하고, 요령이 없으며, 사교성이 없고, 어딘가 모났기 때문인건 아닐까. 

이렇게 나를 탓하는 동안, 앞서 말했던 조급함, 우울함, 무기력함, 자괴감, 패배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러다 지금 살고 있는 지방 소도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2015년 가을이었다.  

서울에서 차로 4시간이 넘는 거리의 이 머나먼 남부도시는 연고도 없는 생면부지의 땅이었다.

별 고민없는 이사였다. 물론 막 정한건 아니고 뚜렷한 이유가 있었지만 내겐 일종의 현실도피이기도 했다. 


환경이 바뀐 덕분이었을까. 

나는 이곳의 낮은 건물과 탁 트인 하늘, 조용한 거리, 도시 가운데를 유유히 흐르는 평화로운 강줄기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마음의 여유를 되찾았고 나의 고민을 객관적으로 그러나 따뜻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햇볕이 쏟아지는 커다란 창문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요리를 하고 일기를 쓰고

동네 카페에서 노닥이다가 노을이 물드는 강변을 산책하는 것이 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SNS는 커녕 인터넷도 잘 하지 않았다. 타인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오직 나만을 돌보았다. 

그렇게 가을, 겨울을 지나 봄이 왔다. 


가장 먼저 좋아진 것은 건강이었다. 몇 년을 괴롭히던 호르몬 기능 저하와 경추성 두통이 거진 사라진 것이다. 

그러자 머릿 속을 매캐하게 채우고 있던 연기 같은 것이 훌쩍 걷히는 느낌이 들었다.

딱딱하던 어깨가 부드럽게 풀어지고 피부는 좋아졌으며 더이상 속이 쓰리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열심히 노을지는 강변을 파워 워킹하고 있을 때였다. 아니 카페에서 노닥이고 있을 때 였나? 

정말 오랜만에, 인생이니 미래니 밥벌이니 생활이니 그런 현실적인 문제들로부터 떠나 '공상'에 빠졌다.

고등학생 때 스쿨버스에서 주로 하던 황당무계한 판타지적 상상이었다. 

 

허무함이나 "이럴 때가 아닌데"와 같은 회의감을 느끼지 않고 공상을 즐긴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릴 때 연습장 펼쳐놓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며 놀던 그런 감각이었다. 상상력과 생기가 되돌아온 느낌. 

이렇게 말하면 진짜 자의식 과잉같긴한데, 껍질이 깨지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냐면, 

그 동안 내가 되지 못하는, 되고 싶지 않은 '나'를 억지로 만들며 애쓰느라 잊고 살았던 진짜 '나'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어른이 되기 위해 애쓰는 동안 새까맣게 태우고 있던 '나'의 뒷면을 드디어 뒤집개로 뒤집은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나를 괴롭힌 직접적인 외부 요인을 꼽자면 

마초적이고 폭력적인 사회구조, 과열 경쟁, 성차별, 기형적인 부의 분배, 획일화된 삶의 기준, 관습적인 사회가치 등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 순응하지 못하는, 순응하고 싶은 '나'와의 싸움이 나를 가장 탈진하게 만들었다. 

내 일상을 잿빛으로 만들어버린 나의 발버둥. 끝없는 자기혐오와 회의주의가 나를 병들게 했던 것이다. 


문제는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벗어나는 방법을 몰랐다.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탈출구는 이렇게 뜻밖의 순간에 발견된다.


이곳에서의 생활도 이제 1년이 지났다. 계절은 한 바퀴를 돌아 다시 가을의 끝에 섰다. 

여전히 나는 햇볕 쏟아지는 창가에서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요리를 하고 산책을 한다. 자그마한 일도 하고 있다. 

하루하루가 정말 커다랗게 느껴진다. 여전히 게으름과 부지런함의 경계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지만 예전보다 훨씬 여유롭다.

좋아하는 것만을 좋아한다.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이 단순한 사치가 나를 풍족하게 만들어준다. 


찌들었던, 마음의 때가 조금씩 벗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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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지나 Rosin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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