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숨어드는 사람들

확실히 요즘은 어딜 둘러봐도 온통 카페 천지다. 이름난 간판의 카페들은 서로 마주보며 있거나, 멀어야 삼십미터 거리마다 하나씩 터잡고 있다.
여기 카라멜 마키아또는 너무 달고, 저기 카푸치노는 거품이 맛이 없고, 거긴 프라푸치노가 맛있고 .. 꼬불꼬불 굴러다니는 이름의 커피들. '아메리카노'를 노래할 줄 모르면 트렌디하지 않은 세상. 신기한 것은, 그 많은 카페마다 사람들이 참 많이도 들어앉아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밖으로 싸들고 나와 한 손 가득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여자들은 카페가 아니면 수다가 안된다. 커플들도 카페가 아니면 데이트가 안된다. 남자들끼리는? 신기할 것도 없다. 걸쭉한 저음의 웃음소리를 허허허 내며 수다떠는 남자들의 모습도 낯설지만은 않다. 그 시끄러운 와중에 공부하는 사람, 책 읽는 사람, 인터넷 하는 사람, 스마트폰 게임 삼매경인 사람까지. 어쨌든,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그런 풍경의 일원이다. '카페'가 생활의 일부가 된 것이 당연해진 세상. 난 저지방 카페라떼만 마셔, 난 아메리카노 투샷만 마셔 - 기호에 따라 자기가 좋아하는 메뉴 하나쯤 있어줘야 하는 그런, 카페의 시대. 그리고 사람들은 끝없이 목마른 듯 하다. 큰 거리에 자리잡은 카페엔 점점 더 많은, 젊은, 파릇파릇한 신입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시장은 점점 거대해진다. 이제 올드해진 카페피플은 소음과 북적이는 사람들을 피하고 싶다. 어쨌든 카페를 벗어날 순 없는데,  자기만의 아지트를 찾아 점점 작은 거리 속,

동네카페로 숨어든다.






# 2. 카페 예찬

사람들이 카페로 몰려드는 것이, 비단 커피 중독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 커피의 맛도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자칭타칭 커피 매니아라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카페라떼와 카푸치노의 정확한 차이도 잘 모른다. 그러나 그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사람들의 카페 중독은 결코 커피 때문이 아니라, '공간'에 대한 갈망이 낳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가볍게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수다를 떨기 위한 '만남의 장'에서 시작하여, 누군가에게는 자신만을 위한 작업실이, 누군가에게는 달콤한 휴게실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카페라는 공간이 가진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카페나 카페 밖이나 사람한테 치이는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적어도 카페에서는 내가 앉은 테이블만큼의 오롯한 내 공간이 주어진다. 서로의 간격이 채 30센치가 되지 않아도 너의 테이블과 나의 테이블은 별개의 세상인 법이다.







# 3. 동네카페의 미학

프랜차이즈 카페의 장점이자 단점은 정량화된 맛이 보장된다는 것. 엇비슷한 메뉴와 엇비슷한 레시피. 여기가 거기. 거기가 여기. 불필요한 모험을 감내하지 않아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나만의 메뉴'가 갖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안정적이다. 미묘한 맛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메뉴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이미 익숙한 공간인만큼, 그 어떤 낯선 지역에서도 복잡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좋다. 프랜차이즈라고 해서 가격이 더 비싸다는 것은 한 5년 전의 이야기다. 요즘은 개인카페가 더 비싼 경우도 많을 뿐더러, 프랜차이즈 가격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더이상 커피 한잔에 4천원 5천원이라고 해서 놀라지 않으니까.

사실 개인카페, 즉 동네카페는 복불복이 강하다. 마음에 들면 한없이 정겹고 좋지만 때때로 검증되지 않은 레시피와 실력으로 커피 맛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이건 영 아닌데 .. 싶은 생각이 들게끔 하니까. 매뉴얼화 되지 않은 레시피는 어딘가 어설프기 마련이고, 그 날 그 날 바뀌는 재료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도 하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느릿느릿한 분위기, 카페 주인장의 센스와 취향에 맞춘 인테리어, 하나하나 수고롭게 고르고 구매했을 컵과 접시, 어설프고 조잡한 손 맛 등이 그리운 날에는 주저않고 동네카페로 가게 된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트렌디한 음악, 환한 조명,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이나 알바생이 보고 싶지 않은 날. 그런 날 말이다.






# 4. 앤틱카페 아르정탱

지산동, 두산동, 파동 등을 아우르는 대구의 유명한 호수, 수성못 끝자락에 위치한 아르정탱. 이제는 고급 일식당에, 스페인 요리, 이탈리안 레스토랑, 프랜차이즈 카페까지 그득그득 들어찬 연인들의 메카가 된 수성못에서 파동으로 향하는 길 어귀의 작은 골목에, 이 작은 카페가 있다.
맘 먹고 찾아가지 않으면 찾기도 쉽지 않은 주택가 골목길에 덩그러니. 작은 간판의 여리여리한 불빛만이 눈에 띈다.





아담한 카페 내부에서는 따뜻한 불빛이 흘러나왔다. 낮은 조도에 아늑한 기분이 들어 기분좋게 늘어지게 되는 우리. 나지막이 흘러나오는 클래식은 가게 구석의 악기들과 썩 어울린다. 흙으로 만들어진 듯 울퉁불퉁한 벽에 발라진 짙은 녹색과 잘 어우러지는 체크무늬 테이블보가 빈티지한 느낌이 들었다. 구석구석 놓인 소품들도 하나같이 손 때 묻은 고풍스러운 것들이다. 아기자기한 느낌이 과하지 않고, 촌스럽게 낡은 느낌이 정겹기도 한, 그야말로 '앤틱'한 느낌이 물씬.





단촐한 메뉴. 카페라기 보다는 '다방'같은 느낌. 커피보다는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차 종류가 많은 것으로 보아, 이 카페의 주 연령층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옆 테이블엔 편안한 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온 중년 부부가 계셨다. 맥주와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심플한 칵테일의 라인업 아래, 식사메뉴엔 뜬금없게도 수제비가. 이거야말로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겠다'는 프리한 경영 방침이 아닌지. 피식, 하고 웃음이 나오면서도 그 맛이 궁금해진다. 동네 어르신들이 수제비를 좋아하거나, 카페 사장님께서 수제비 만들기에 자신이 있으신게지.





메뉴를 시키자 서비스로 나온 토스트. 마가린을 발라 노릇하게 굽고 설탕을 뿌렸다. 어렸을 때 엄마가 자주 해주시던 그 정겨운 맛 그대로.





아이스 오미자, 라벤던티, 장미차, 그리고 맥주 하나. 주문한 메뉴가 낡은 나무 트레이에 가득 올려져 나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무엇하나 허투루 나온 것이 없다. 맥주 안주로 삼을 구운 김과 과자가 앤틱한 접시에 담겨 나올 정도.







# 5. 딱히 할 말은 없는데 

원래 살가운 사이가 아니다보니 오랜만에 만나도 반갑다는 말 한마디 없는 녀석들. 왜 늦었냐고 타박이나 할 줄 알지, 장미꽃도 무뚝뚝하게 주고 받는 기집애들. "자 이거나 받아라." "뭔데 니가 꽃 주니까 심장박동수 떨어져서 죽을 것 같다." 뭐 이런 대화밖에 할 줄 모르는 대구 여자들. 근데 도대체 꽃은 왜 준거야? 닭살 돋아서 체온이 내려갔잖아. 참 괜히 좋고 고마우면서도 이렇게 빈정거리는 '츤데레'들. 

* 츤데레 : 좋거나 수줍을수록 더 오버해서 겉으론 쌀쌀맞게 구는 비틀린(사랑스러운) 성격.

딱히 할 말이 있어서 만난 것도 아닌데 희한하게도 수다는 끊이질 않는다. 먹고 살기 힘들다, 내 인생 암울하다, 그래 니 인생은 좀 암울한 거 같아. 뭐 이런 서로 무덤 파주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나가수 이야기, 무한도전 이야기, 빅뱅 이야기, 이런 영양가 없지만 쫄깃하게 흥분되는 이야기도 했다가, 간만에 생산적인 시사 이야기, 책 이야기, 영화 이야기도 했다가. 중구난방 럭비공처럼 마구 튀는 대화 주제 사이에서도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오랜 친구는 참 위로가 되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때때로 낡은 카페에서 오랜 친구같은 냄새를 맡는다. 그건 흐르듯 변하는 주변의 풍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황망히 섰을 때, 말 없이 등을 토닥여주는 다정함과 비슷한 냄새다. 때로는 어설프고 무뚝뚝하더라도, 담백하고 진솔한 위로가 있기 마련이다. 대개 그런 위로는,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이 아니다.

그러니 마음 속 아지트처럼 낡은 카페 하나, '우리 동네'에서 찾아보는 것은 어떨지.
어설프고 무뚝뚝하더라도, 담백하고 진솔한 오랜 친구같은 동네카페, 말이다.

뭐, 이 정도면 마무리로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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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지나 Rosin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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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롱이+ 2011.06.14 12:4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오호 대구에 또 이런곳이...
    대구 살면서도 몰랏네요!
    좋은 곳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 빛돌★Limited 2011.06.14 12:4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공간에 대한 갈망' .. 참 공감가는 말입니다.

    그나저나 인테리어만 그럴싸한가 했는데, 찻잔이나 자잘한 소품들도 신경을 많이쓴 것 같네요.

    내년 1월, 김광석님 기일에 대구 한 번 가보려고 하는데 이 까페도 메모해놔야겠어요 ^^

    • 로지나 Rosinha 2011.06.14 13:1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간만에 이런 소박한 동네카페가니까 참 정겹고 좋더라구요 ~
      1월에 대구 오시는군요! 근데 굳이 찾아기시기엔 좀 외진 구석에 있어서 힘드실 수도 ㅠ_ㅠ ㅋㅋ

  3. 신럭키 2011.06.14 13:0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옷 이런 곳도 있군요. 여기 나중에저도 꼭 들려야겠네요

    • 로지나 Rosinha 2011.06.14 13:1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분위기는 아늑하고 참 좋지만 그야말로 '동네카페'라는 느낌이에요. 독특한 느낌이 좋긴 했어요 ^_^
      파동 근처 계신다면 가보실만한데, 좀 멀리 계신다면 굳이 찾아가시는 것 보다 가까운 곳의 '동네카페'를 개발해보심이!

  4. 펜릴 2011.06.14 23:4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동네카페의 존재는 소중합니다... ㅎㅎ 저도 울 동네 한바꾸 돌아봐야겠군요...
    멋진 사진과 소개 잘 읽었어요^^

  5. 봉수추레라 054-858-9785 2011.06.15 02:2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것도 대구나 서울같은 대도시서나 동네서 카페찾죠. 여 이 촌에는 동네엔 그냥 다방밖엔.....ㅋ

  6. 악의축 2011.06.15 14:3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제가 꽤 자주가는 미도다방도 클래식컬하지만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옛날사람들..

    가끔 음악감상실 녹향을 찾기는 하지만...

    나중에 카페나 하나 차릴까봐요..상호는 "동네카페" ㅎㅎㅎㅎ

    • 로지나 Rosinha 2011.06.16 09:5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축님 블로그에서 봤던 그 미도다방 말씀이시군용 ㅎㅎ
      안그래도 가보고 싶긴한데 .. 저같은 상큼한 아가씨가 들어가면
      미도다방 공기자체가 바뀌어버릴까봐 함부로 못들어가겠어요 ~ ^.^ 호호호

      ... 농담이에요. 잘못했습니다.

  7. 슬로레시피 2011.06.15 19:5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오 ㅋㅋ 진짜 엔틱이네요 제대로
    저기갈땐 옷도 중세컨셉으로 (응?) ㅋㅋㅋ
    츤데레 이쁜말까지
    배워가네요 오늘 -
    잇힝 자주써먹어야지

    • 로지나 Rosinha 2011.06.16 09:5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허억. 슬로레시피님.. !!! 츤데레 이쁜말 아니에요. 이런 엄청난 오해를! 제 탓입니다 ㅠ_ㅠ
      츤데레는 일본 은어에요. 속칭 오타쿠 용어라고 하기도 하죠.
      단어 하나가 너무나 절묘하게 제 성격을 딱 묘사해주길래 저도 한 번 써본거랍니다!
      교양있고 감수성 넘치는 아가씨들은 저런 단어 쓰시면 안됩니다! (ㅋㅋ)

    • 슬로레시피 2011.06.16 10:0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저런 제 이해력이 저것밖에안되나 보네요
      이쁜말이라고 어디서 써먹었다가
      무식의바닥을 들키고말뻔 ㅋㅋㅋㅋㅋㅋ

      그냥 '츤데레' 라고 보면 이뻐보이고
      (사랑스러운) 이라고되있길래
      밉지만 미워할수만은없는성격 정도로 알아들었는데
      흑흑

    • 로지나 Rosinha 2011.06.16 10:2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아뇨아뇨 슬로레시피님은 정확하게 이해하셨어요 ㅋㅋ
      밉지만 미워할 수만은 없는 성격, 요거 완전 맞아요. 이해력 백점입니다!
      딱 그 말씀 그대로의 의미가 맞는데 .. 아무래도 일본은어라는게 좀 맘에 걸려서 ..
      이쁜 단어는 .. 아니다보니까요 그 기원이 ㅠ_ㅠ

      혹시라도 쓰셨다가 슬로레시피님의 품격에 상처라도 입힐까 싶어서 걱정되어서요!

  8. 아르정 2011.07.28 08:3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아르정탱 카페 위치보러 검색했다가 이렇게 좋은 글을 읽게 되다니... 멋진 카페 리뷰 잘봤습니다 ^^

  9. 악의축 2011.08.02 12:0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몰랐는데 여기 아르정탱에서 잘알고 있던 크로스오버음악을 하는 실내국악단 뮤지음하고 사장님하고 친분이 꽤 있더군요. 공연도 했었구요. 그게 로지나님이 포스팅했던 아르정탱이였습니다..ㅎㅎㅎ

    요 포스팅때문에 사건이 하나 있었거든요. 암튼 좋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10. 구정은 2011.10.13 00:5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제가 너무 좋아하는 곳이랍니다. 아르정탱

  11. 시나브로 2011.10.13 20:3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많은 분들의 글을 읽어봤지만 로지나님의 글은 참 아름다운 듯 합니다..
    이런 글을 읽게되다니..행운이네요.
    좋은 글, 멋진 사진 잘 감상하고 갑니다..^^

    • 로지나 Rosinha 2011.10.14 00:1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과찬의 말씀을 .. 정말 행복한 댓글이네요; 부끄럽기도 하고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써야겠는걸요? :) 또 들려주세요!

  12. 백수 2012.05.06 17:3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성신여대 카페 검색하다 왔는데 아르정땡이^^
    수제비랑 치킨라이스 맛이 괜춘하답니다 :)

  13. Hilower 2017.01.04 18:5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한적한 카페 찾다가 포스팅을 보게 되었어요. 로지나님 글이 좋아 티스토리 가입까지 하게되었네요ㅎㅎ좋은 글 감사합니다:)

  14. 악의축 2017.08.03 15:4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올만에오네요. 아르정탱 이제 추억의 공간이죠..ㅎ